예전에 썼던 50문 50답의 문항을 몇 개 수정하고 최신 답변으로 업데이트 해봤습니다. 평소 익구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셨다면 댓글로 질문해주세요. 성심 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익구닷컴 최고의 스크롤의 압박을 자랑할 듯싶은데 이제 이런 긴 글은 정말 자제할게요. 알면 알수록 오히려 할 말이 줄어드는 역설 속에서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일평생 “무지의 안락”과 싸우겠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을 배우고 온라인 상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기 시작한지 일곱 해입니다. 안 했으면 좋았을 말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런 실수들도 제 성장통이 되고 제 인식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말이 아무리 훌륭하여도 실행되지 않는다면 말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言工無施 不若無言)”는 백사 이항복 선생님의 말씀을 천금처럼 여기고 게으른 심신을 다독여서 꾸준히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익구닷컴 방문객 10만명 돌파에 지대한 공을 세워주신 스팸 로봇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1. 이름(실제...^^)
최익구. 높을 崔자에 날개 翼자에 구할 求자입니다. 이름의 뜻은 “높이 날아서 구하라”라는 거창한 뜻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스로 호를 지어서 쓰고 있습니다. 평생토록 쓸 호가 정해진 것은 아니니 좀 더 좋은 호가 생각이 난다면 몇 번 더 변경될 여지는 있습니다. 최근에 무기(無棄)라는 자호(自號)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박연이 세종대왕에게 시각장애 악공들의 처우 개선을 요청하며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다(天下無棄人也)”라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그간 제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남을 미워했던 것을 반성하는 의미기도 합니다. 제 미움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 제 옹졸함이 빚어낸 것임을 자각하고, 저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에게서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전에 드라마 신돈을 즐겨 볼 때 한동안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뒤지며 고려 말기 역사에 빠졌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저마다 약점이 있는 사람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약점에 집착하기보다는 장점을 도두보는 노력을 함께 해보고 싶어요. 훌륭한 목수는 버리는 재목이 없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으며, 웅숭깊은 스승은 아랫사람에게서 배우며, 부지런한 학생은 자신이 증오하는 것에서도 장점을 취하듯이 말입니다. 편협하거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너그럽고 섬세하며 온유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여하간 제가 지은 호대로 사람이든 꿈이든 원칙이든 제가 맺은 인연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2. 생년월일과 고향
1983년 7월 18일(음력 6월 9일)입니다. 대구에서 태어났는데 가뜩이나 더운 대구이지만 그 때는 더 더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위에 무척 약합니다.^^; 제 명목상 고향인 대구가 이런저런 사건사고로 말미암아 디시인사이드 사건사고갤러리에서 고담 대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었다고 합니다. 배트맨이 활약하던 그 우울한 도시와 대구가 포개지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3. 혈액형
A형입니다. 저는 혈액형 심리학은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누차 강조합니다. 뭐 다들 알면서 농담 삼아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이상하게 혈액형 운운하는 게 탐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혈액형 심리학이 유행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네 가지 혈액형의 분포가 비교적 골고루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경우 A : B : O : AB형이 34 : 27 : 28 : 11로 비교적 균등하게 나오는 편입니다.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데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서 혈액형 심리학이 성행하고 있지요. A형과 O형의 비율이 압도적인 유럽 나라들에서는 혈액형별 성격유형을 따질 실익이 없으니 말입니다. 여하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특성을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바넘효과(Barnum effect)라든가, 혈액형별 성격 유형에 자신을 꿰맞추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같은 것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MBTI 같은 보다 정밀한 성격심리 검사를 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MBTI심리검사 상으로는 INTJ형, 심리학자 칼 융의 분석 상으로는 내향적 사고형입니다.
4. 장래희망
졸업을 앞둔 중학교 교실의 심드렁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책이나 주워 읽던 중에 담임 선생님께서 넌지시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장래희망의 뭐냐는 질문에 별 생각 없이 대학 교수라고 말씀 드렸지요. 담임 선생님께서는 분개하시며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 결국에 나 같은 선생님 정도에 그친다며 1시간 동안 열변을 토해내셨습니다. 당신께서도 소싯적 꿈은 대학 교수였다며 좀 더 큰 꿈을 주문하셨고 귀가 얇았던 저는 그 때의 여파였는지 허풍만 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막연히 제 장래희망을 국무총리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둘러대면서 말이죠. 국무총리는 직선 대표가 아니기는 하지만 한번쯤 꿈꿔 볼만한 직업(?)이니까요. 인사청문회법을 통해 임명직 대표인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에 대한 검증이 보다 더 섬세해진 것은 환영할 일이고요. 그만큼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국무위원과 중앙행정기관의 장, 정부위원은 모두 정부조직법에 그 범위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행정부 최고 심의기구인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의장, 국무총리가 부의장이 되며 18부 장관 및 기획예산처 장관이 국무위원이 됩니다.
여기서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이 아니라 국무회의 구성원이라고 칭해야 합니다. 따라서 현행 국무회의 구성원은 21명입니다. 여하간 제 장래희망은 국무회의 구성원입니다. 꿈을 위해 매진하다가 제 한계에 맞닥뜨리면 그 때 가서는 정부위원으로 할인(?)하든지 하려고요.^^; 세상사는 자기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일을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잘한다고 해서 그 일이 밥벌이가 잘 되는 것도 아니며, 절실히 원하고 살뜰하게 노력한다고 해서 뜻하는 바를 끝끝내 이루는 것도 아니니까요. 중도에 지쳐 쓰러지고 힘에 부칠 때, 희망과 신념을 위해 한번 오롯이 바치고 난 거기까지가 제 한계라면 안달하지 말고 다른 꿈을 품어볼 생각입니다.^^;
5. 아이디, 뜻, 그리고 만든 이유
인터넷을 쓰기 시작한 초기에는 철학자 칸트를 흠모하여 kant가 들어간 아이디를 쓰다가 제 스스로 호(號)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는 호를 따서 아이디를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담혜(澹兮)에서 따온 damhye, 소권(疏權)에서 따온 sogwon, 우약(憂弱)에서 따온 uyak 등이 그것입니다. 요즘에는 어지간하면 liberal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미 가입된 아이디인 경우 생각은 힘이 세다라는 뜻으로 만든 strongthink를 쓰기도 합니다. 아이디가 아닌 별명(닉네임)으로 많이 쓰는 건 새우범생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은 건데, 대가들 틈에 끼어서 부지런히 새우등 터져 가며 열심히 배우겠다는 제 나름대로의 향학열(向學熱)을 표현한 겁니다.
6. 주량
지난 여름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를 벤치마킹한 “술 술 술 술을 마십시다!” 프로젝트를 통해 내수 경기 진작에 대한 강한 열의를 나타냈습니다. 이 숭고한 취지에 동감하는 분들께서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발판을 함께 마련해 주셨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 트레이드마크를 “릴렉스 롱런(쉬어가며 오래가는)” 음주 대신 “1+α(일단 한 병은 먹는)”음주로 전환했습니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보면 공자는 술을 마시는 데 한도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술에 취해 어지러워지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唯酒無量 不及亂)고 했습니다. 정해진 주량은 없으나 취하지는 않고 기분이 좋은 정도로 그친다는 말입니다.
저는 유주무량과 불급난의 아름다운 결합을 지향하지만 굳이 수치를 제시하자면 1.5 단위 이상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마시려고 합니다. 즉 소주 1.5병, 맥주 1500cc 이상을 마시는 것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2004년에 사발식 시주 7번 한 이후로 범막걸리 계열의 술은 어지간하면 피합니다.ㅜ.ㅜ 저랑 막걸리나 동동주 마시자고 하면 곤란해요. 제가 좀 덜 가난하거나, 덜 충동구매 했다면 남는 돈으로 포도주를 즐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참 그리고 소비자 후생을 필연적으로 깎아먹는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처음처럼 한 병쯤 챙겨주세요.
7. 자신의 성격, 20자평!
이 세상에 한 뼘의 자유라도 넓히고 싶은 자유주의자, more liberal!
8. 나만의 징크스나 콤플렉스
중국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는 여섯 살 소년이 뉴스가 된 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의 말이, 전생에 태어났던 나라의 말은 쉽게 배운다는 것이다. “그럼 난 한국에서만 계속 태어났나 봐. 외국어에 영 젬병이니.” 내가 원통히 뇌까리자 그 친구가 얄밉게 말했다. “넌 사람으로 처음 태어난 거 아닐까?”
황인숙 시인님이 2006년 5월 한국일보에 기고하신 [영어공부]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나는 왜 영어를 이리 못할까?”라고 한탄하면서 쓰신 수필의 일부입니다. 저도 어쩌면 사람으로 처음 태어난 건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세계화의 거센 파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는 제 자신이 측은하지만, 늦게까지 모국어의 속살을 헤집는 녀석으로 남고 싶어요. 비록 국내용 인재에 그치더라도 여전히 글로벌 인재보다 그 수요가 많은 만큼 그 수요에 부응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9. 자신의 이상형은?
제 주제는 파악 못하고 눈이 높은 편입니다. 일단 저보다는 똑똑한 사람이 좋아요. 저보다는 좀 더 재치 있고, 유연하며, 현실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좋고요. 저보다 나아 보이는 면이 많아야 평생 보고 배울 수 있겠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해서 티격태격 싸울 일이 없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저보다 외국어를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눈물은 아끼되 세상의 서러움에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자리를 신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 눈이 하늘 높이 달렸다고 구박하셔도 달게 받으려고요. 그러나 이상형이라면 모름지기 까다로운 측면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상형을 그리는 까닭은 그것이 반드시 옳거나 유익해서가 아니라 드물고 찾기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10.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녹색과 노란색
11. 좋아하는 음식
순두부찌개, 냉면, 제육볶음, 통닭, 참치김밥, 메밀국수, 처음처럼(?)
12. 싫어하는 음식
오이 ㅡ.ㅡ
13. 좋아하는 사람 타입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는 뜻으로 무기(無棄)라는 호를 지어 쓰고 있는 만큼 기왕이면 모든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기』 이사열전(李斯列傳)에서 진시황이 다른 나라 출신들을 의심해 모두 국외로 추방하려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릴 때 초나라 출신 이사는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상소를 올립니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처럼 크게 되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처럼 깊게 되었다(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이사의 주장에 진시황은 축객령을 철회하고 이사를 중용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뤄냈습니다.
그래도 굳이 타입을 말하라면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는 사시(社是) 혹은 모토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2004년 경영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학생회장 인사 시간에 제가 새내기들에게 했던 첫 번째 당부가 “자유를 만끽하시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시기 바랍니다"였기도 합니다.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한다”는 말은 저 같은 자유주의자에게 있어 그 어떤 모토보다 명징한 신념이 아니지 싶어요.
경영학의 비용편익분석에서 영감을 얻어 주어진 자유만큼의 책임을 다했는가하는 자유책임분석(Liberty-Responsibility Analysis)을 생활화하려고요. 회계학적으로 보자면 분개할 때 차변에 얼마만큼의 자유를 쓰면, 대변에는 그만큼의 책임을 기입해야 대차평균의 원리가 맞는 셈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란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4. 좌우명
명언명구 수집이 삶의 한 부분인 저로서는 좌우명 삼고 싶은 말들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실력 있는 이상주의자가 되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는 말을 패러디한 “지성감인(至誠感人)” 정도가 제가 만들어서 쓰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선현의 말씀을 빌려와 쓰고 있습니다. 몇 개 소개하자면 『도덕경』 2장의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功成而弗居)” 공을 쌓아도 그 공을 주장해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무언가 이룬 것이 있을 때 마치 저만의 공인 것처럼 자랑하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여조겸의 『동래박의』에 나오는 “군자는 제가 약한 것을 걱정하지 적이 강한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子憂我之弱 而不憂敵之强)”저는 이 말을 언제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모자람을 인식하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맹자』의 “스스로 반성해서 정직하다면 천만인이 가로막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는 구절도 제게 힘이 됩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계원필경(桂苑筆耕) 서문에 보이는 “남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한다(人百己千)”는 구절은 열심히 살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원나라 명재상 야율초재가 말씀한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은 하나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보다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한 가지 하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한 가지 수고를 더는 것보다 못하다(興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도 요즘 저를 흔들고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의 노력으로 진리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I may be wrong and you may be right, and by an effort,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는 철학자 칼 포퍼의 말씀은 정말 아름답죠. “장기에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며 장기적으로 경제는 균형에 이를 것으로 낙관하던 고전학파 경제학에 신랄한 비판을 한 경제학자 케인즈의 말씀도 여러모로 시사점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저의 2대 선조님인 문헌공 최충 할아버지께서 “선비가 세력으로써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어렵고, 훌륭한 학문과 행실로써 영달하여야 비로소 경사가 있다(士以勢力進 鮮克有終 以文行達 乃爾有慶)”는 말씀을 새기고 있습니다.
제게 좌우명을 하나만 골라보라고 물으신다면 그 질문은 너무 잔인합니다. 하지만 대외 홍보용으로 하나 정할 필요는 있을 거 같아요.^^;
15.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프로포즈를 한다면 어떻게?
제 역할 모델인 칸트께서는 “진실한 사랑에 빠진 남자는 그 애인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제대로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수줍음이 많아서 프로포즈 같은 건 여러모로 애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뭔가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다른 프로포즈가 없어도 좋아하고픈 녀석이 되려고요. 화려한 이벤트보다는 시시한 일상의 실천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16. 요즘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밖에서 놀거나, 일찍 자거나, 인터넷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티비는 잘 챙겨서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나마 사극을 즐겨 봅니다. 요즘은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이 무척 재미나던데 개인적으로는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본 [신돈]이 기억에 나네요. [100분 토론]을 비롯한 토론 프로그램이나 온게임넷 스타 경기 중계를 애청합니다.
17. 감명 깊게 읽은 책
중학교 1학년 때 어쩌다가 노자의 『도덕경』을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기막힌 인연이었어요. 어린 마음에 무언가 얽매이지 말고 착하게 살자라는 교훈 정도만 얻었지만... 강박관념과 완벽주의에 시달리던 저에게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 같습니다. 동양고전 하나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신 분들은 사서(四書)보다 도덕경을 먼저 건드려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곱씹어볼 말들이 무척 많지만 그 가운데 최근 제 마음을 흔든 건 27장의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아끼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밝음을 터득함(襲明)이라 합니다(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라는 구절입니다. 왕필(王弼)은 주석을 통해 성인은 나아갈 것과 향할 것을 만들어서 진보에 뒤쳐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지 않으며, 저절로 그렇게 됨을 도와줄 뿐 새롭게 일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풀이합니다.
노자의 “사람을 버리지 않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갈라서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모든 사람과 사물을 한결같이 대한다는 점에서 보통사람의 차별주의적 세계관을 뛰어 넘어 선악과 시비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아 조금 공허하게 들리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그런 식의 공허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혹은 세속적으로 해석해서 사람을 구제하기를 즐기며, 스스로의 편견으로 말미암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이 없는 자세로 본다면 얼마든지 실천 덕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남자』에서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사람에 버릴 사람 없고, 물건에 버릴 물건 없다(人無棄物 物無棄物)”고 말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다시금 제 호인 무기(無棄)가 여기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음을 밝힙니다.
60장의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若烹小鮮)”는 말도 좋아합니다. 작은 생선을 굽는다며 젓가락으로 헤집고 뒤집기를 반복한다면 생선살이 부서지고 말 겁니다. 가만히 놓아두고 지켜보는 것도 어렵고, 적절한 시점에서 뒤집기는 또 얼마나 어렵습니까. 생선을 은근하게 굽는 마음처럼 어떤 일을 하든지 억지로 쥐어 짜내지 않고, 자연스레 배어나고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약팽소선은 도가적(道家的) 자유주의자를 지향하는 제가 그리는 “억지로 하지 않기에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의 고요함과 치열함이 아닐까 싶어요. 생선이 새카맣게 탈 때까지 야윔의 고착화를 방관하지도 않고, 노릇노릇 익기도 전에 뒤집으려고 서러운 눈물을 요구하지도 않겠습니다. 전체주의의 젓가락이 생선살을 들쑤시는 것에 맞서고, 인위적인 손길이 센 불로 높여 생선껍질 태우는 데 고개를 젓겠습니다.
18. 자신의 보물 1호(‘자신’을 제외한..^^;)
제 온라인 보금자리인 익구닷컴(www.ikgu.com)입니다. 2003년 7월 개통한 이후 제 잡글들을 틈틈이 모아둔 저의 분신입니다. 요즘 딴에는 공부한답시고 긴 글을 예전처럼 자유로이 쓰지 못할 거 같아서 매일매일 짤막한 일기를 쓰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요. 저란 녀석이 궁금하시면 주저말고 놀러오세요.^-^
19. 가장 행복할 때는? or 가장 행복했던 때는?
중국의 운문선사의 “날마다 좋은날(日日是好日)”이라는 가르침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Eleanor Roosvelt)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and today is a gift, that's why they call it the present.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를 선물이라고 부른다”니 정말 멋진 말이에요. 정말 오늘 하루를 선물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겠죠.
20. 타인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은? or 듣고 싶은 말은?
“너와 함께 해서 유익했다”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고 싶다” “소중한 인연이다”
저란 녀석과 교류하는 것이 살림살이에 코딱지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고, 쥐꼬리만큼이라도 유쾌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랜 시간 곁에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픈 녀석으로 평가된다면 일개인으로서 그만한 영예가 없겠죠.
21.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빌어먹지 않고 “벌어먹는” 삶을 살고만 있다면 감지덕지겠죠.
22. 거울을 본 후 자신의 생각은?
수염을 기르면 미염공(美髥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찍 잘까? 술을 줄일까?
슬퍼하지 마라. 거죽은 머잖아 하향평준화 될지니...
23. 최근에 슬프거나 울었던 기억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지한 정당인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가슴 아픕니다. 제 지지자들에게서 버림받는 정치인처럼 처량한 것도 없다지만, 자신의 꿈을 투자했던 인물에게서 실망을 느끼는 지지자도 서럽기는 매한가지일 거 같아요. 지난 5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친구네 집에서 밤새도록 통음하다 꺼내든 책에 정현종 선생님의 『대학시절을 향하여』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퀭한 눈으로 읽다가 “우리의 열망과 꿈이 정당한 것이라면 정당한 것일수록 스며드는 아픔도 클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콧잔등이 시큰해졌어요. 술을 더 마셔야 했기 때문에 울지는 않았지만요. 푸하하
저는 3년 전 열린우리당이 창당할 때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달려갈 만한 가능성이 가장 많이 보인다며 추켜세웠습니다. 우리당이 실적이 엉망이라며 아우성인 투자자들을 외면할 때도 솔직히 조금 더 넉넉하게 지켜봐 줬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 정당이 너무 많은 기대를 이루어주길 바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잘 살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에 대한 꿈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청부안민(淸富安民)의 꿈은 독점 불가능하잖아요. 우리당의 실패가 온건 보수 노선, 개혁적 자유주의 노선이 통째로 폐기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제 대책 없는 낙관주의는 케인즈의 유효수요(effective demand) 개념을 빌려 왔습니다 이 실패를 거름 삼아 다시금 괜찮은 보수정당을 꿈꾸는 수요가 공급을 창출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품습니다. 저는 아직 젊은 데 벌써 제가 지향하는 바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려니 섭섭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걸 미련이라고 해야 할까요?^^; 노무현 대통령님과 참여정부가 얼마나 더 초라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네들이 소나기를 맞으며 물러갈 때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동이 옳아서가 아니라 드물기 때문입니다. 아 너무 솔직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네요. 그만큼 여러분들께는 솔직하고 싶어요.^-^
24.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주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미시경제학 공부를 하다가 일반균형분석(general equilibrium analysis)이라는 화두를 얻었는데 이 안목을 선물하고 싶어요. 이건 일방적인 선물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이겠지만요. 단기간의 부분균형분석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간을 포함해서 서로 연관된 모든 시장들을 함께 분석하는 일반균형분석의 아이디어를 이제야 깨닫다니 제 무식을 고백하는 거 같아 부끄럽네요. 한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른 시장의 균형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부분균형분석은 복잡한 경제현실을 단순화함으로써 특정 시장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용이하게 분석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각 시장 사이에는 연관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 한 시장의 변화가 다른 시장의 균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두 분석 기법 모두 저마다의 가치와 유용성이 있지만 제게는 일반균형분석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제도를 고쳐나가는 시각이 좀 더 필요할 거 같아요. 지금 당면한 현상 너머의 파급효과와 상호작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그것이 좀 더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키는 일이 될 거예요. 함께 해요.
25. 꼭 봤으면 하는 영화
영화를 많이 안 봐서 잘 모르겠네요. 유치찬란한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오렌지 카운티]를 추천합니다. 국내에서는 영화로 개봉하지 않고 곧바로 비디오로 나온 것 같은데 그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 별명 가운데 하나가 미스터 빈인데 저는 그런 식의 유치한 영화가 좋아요.^^
2004년 10월 1일 종묘 답사부터 시작된 목조건축에 대한 관심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려청자, 불화, 불상, 석탑 같은 고미술 전반으로 확장되더니 이제 문화산업이나 문화정책까지 눈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종묘는 세계문화유산이기 이전에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사진 배경인 종묘 정전(正殿)은 여느 고궁과는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사를 위한 건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종묘 정전은 남문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月臺, 대궐의 전각 앞에 놓인 섬돌)가 넓게 펼쳐 있지요. 종묘 정전의 웅장함에 몸서리치면서도 허구한 날 죽은 이를 위한 정성을 쏟느라 살아있는 자들의 고통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울한 역사가 떠오르네요.
여하간 그럼 다시 이어집니다.^^;
26. 생일날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
저는 생일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두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의 생일에도 무심한 편이지요. 저는 단순한 생일보다는 개인적인 기념일이 더 크게 다가오거든요. 가령 1월 14일을 사색의 날, 9월 10일을 독서의 날 이런 식으로 기념하는 참 특이한 녀석이지요.^^; 좀 더 첨언하자면 생일보다는 망일(亡日)이 더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여하간 생일 선물은 문화상품권이 좋고 포도주 같은 술 선물도 좋을 거 같아요.
27.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걷는 걸 좋아합니다. 소요(逍遙) 혹은 만보(漫步)라고 할 수 있지요. 가끔 그 정도가 지나쳐서 저랑 문화유산 답사를 가는 친구들은 탈진 답사 모드라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발 운동으로 뇌의 혈류량이 증가하면 뇌도 함께 활성화되어서 좋은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오후 4시에 어김없이 시작하는 칸트의 산책을 보며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죠. 또한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란 글을 남기기도 했지요.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내 마음은 언제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제게는 그나마 산보가 최고의 운동인 셈입니다. 이 밖에도 필 받아서 잡글 쓰기, 애견 야니 안마해주기, 온오프라인 헌책방에서 충동구매하기 등이 있습니다.
28. 결혼 후 가족 계획은?
국가적인 저출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두 명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29. 나는 이럴 때 죽고 싶다
죽고 싶을 때 덜컥 죽는 것은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아서 행복에 겨워 살면 정말 죽고 싶지 않겠죠. 저는 좀 더 살고 싶은데도 천수를 누린 만큼 어쩔 수 없이 죽으려고요.^^ 일세를 풍미했던 고려 태조 왕건의 붕어가 임박하자 슬퍼하는 신하들에게 웃으며 말하길 “덧없는 생명이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다(浮生,自古然矣)”라고 한 말이 참 감명 깊습니다. 마지막에 이런 멘트 날리면서 그래도 너희들은 열심히 살아라 이렇게 말하고 떠나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푸하하
30. 친구와 약속, 친구가 오지 않는다면?
고대 타임에 물들어서 솔직히 저도 약속 시간을 자주 늦는 편이라...^^; 대개는 독촉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리는 편입니다. 제가 남을 기다리게 했던 과오들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죠. 가까운 곳에 서점이 있으면 냉큼 들어가기도 합니다.
31. 지금, 자신의 핸드폰 첫 화면에는 뭐가 써있나요?
익구닷컴 놀러와요
32. 자신의 습관이나 버릇
실내에서 무언가 깊이 생각할 것이 있으면 막대기나 부채 같은 거 하나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생각합니다. 영화 [어 퓨 굿맨]에서 탐 크루즈가 고심할 때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죠.
33. 자신의 장점과 단점
제 장점은 “편애하되 편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나 사회적 이슈 등에 있어 제 입장과 주관을 비교적 솔직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외부의 비판을 검토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반성적 균형(reflective equilibrium)을 늘 새기면서 편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 입맛에 맞는 정보만 골라먹고 듣기 좋은 소리만 귀담아 듣고 제 협량한 경험에 기대어 세상사를 재단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동전의 양면을 보려 하고, 그림자까지 파헤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싶은데 참 어렵네요.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단순한 산술평균이 아니라 숙고한 반성의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는 점이 묘미입니다. 편식하지 않되 편애하겠다는 제 삶의 태도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보다 해볼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공사 분간도 못하는 흐트러진 녀석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공과 사에 대한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고요, 어떤 자원을 배분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편애를 싹 거두고 최대한 공평하게 나누도록 할 자신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불편부당과 무색무취일랑 벗어 던지고 제 생각을 숨기지 않고 말씀드릴 겁니다. 기왕이면 옳은 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애쓰되 사심 없이 복선(伏線) 없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께 늘 투명하고 거짓 없이 대하는 게 마땅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아 이 사람이라면 허장성세를 부리지 않고 제 깜냥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며 알콩달콩 성실하게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살겠습니다.
제 단점은 너무 많습니다. 제 구질구질한 생활 태도에서부터 모자란 성품까지 오만가지를 들 수 있겠죠. 일단 제가 너무 재미가 없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제 앞에서 농담 삼아 말도 잘 못하겠다고 하고, 뜬금없이 좌중을 심각하게 몰고 가는 제 보이지 않는 힘(?)에 기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상대방 이야기에 맞장구를 잘 못 쳐주는 데 있는 거 같더라고요. 심오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그 말을 거꾸로 받아들이면 재가 그만큼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에둘러서 말하는 간접화법을 즐기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보다 솔직하겠다면서 직설화법은 최대한 피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셈입니다. 좀 더 “열려 있고 쉽고 낮은” 후배, 친구, 선배가 되기 위해 한참이나 더 노력해야 할 거 같아요.
국어 교과서에 나온 일석 이희승 선생님의 딸깍발이를 너무 감명 깊게 읽었던지 알게 모르게 딸깍발이를 닮아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정말 딸깍발이 샌님 같이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어요. 딸깍발이 재판관으로 유명한 조무제 전 대법관님은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 갑자기 옆을 돌아보면 떨어질 수도 있다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결같은 사람을 저의 제일의 모토로 삼은 이래로 다양한 가치들을 부지런히 키워왔지만 한결같음에 대한 갈구는 그칠 줄 모릅니다. 조지훈 선생님의 「지조론」에 열광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지요.
저의 고지식한 꼬장꼬장함과 고답적인 깐깐함이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거 같아서 여간 미안한 게 아닙니다. 일전에 후배들과 함께 엠티 후발대를 가게 된 일이 있는데 표가 모자라서 무임승차를 해야할 처지가 되자 제가 다음 기차를 기다리든가 아예 엠티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시외버스를 타고 엠티 장소로 향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좀 너무 했구나 싶어요. 여하간 제 개인적 의리와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쓸데없는 원칙주의를 고수하거나 별 다른 이유가 없을 때는 통상관례를 끔찍이도 아끼는 보수적 태도가 많아서 역시 최씨 고집이라며 지탄받기도 합니다. 『장자』 칙양(則陽)편에는 위(衛)나라 대부인 거백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늘 자신이 딛고 있는 것의 잘잘못을 조회하며 일진월보(日進月步)하는 자세를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거백옥은 나이 육십에 육십 번 변화했다. 처음에는 옳다고 했던 일도 나중에는 잘못이라고 물리쳤다. 육십 세가 된 지금 옳다고 생각한 것도 실은 59세까지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장차 잘못된 것으로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 未嘗不始於是之. 而卒詘之以非也. 未知今之所謂是之非五十九非也.
이 말처럼 스스로 돌아봐서 잘못을 했을 때는 깨끗이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자세를 갖추고 싶습니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일관성과 유연성을 잘못 섞어서 헝클어진 인생을 살다 갔듯이 저 또한 부단히 경계해서 지인들께 괄목상대(刮目相對)하는 기쁨을 안겨 드리고 싶어요. 아무튼 이렇게 두서없는 횡설수설이 너무 잦다는 점도 제 단점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고 써야 하는데 조바심 때문에 늘어놓기 일쑤지요. 맛깔스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가득한데 몇 년째 잡글을 쓰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제 허술한 글재주도 불쌍한 약점이겠죠. 이토록 모자란 게 많은 녀석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34. 만화책이나 소설책에서 한번 되어봤으면 하는 주인공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짓고 안인회 선생님이 번역한 『폭력에 대항한 양심』이라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 카스텔리오가 되고 싶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려고 평생 노력할 생각입니다. 카스텔리오는 칼뱅 정권이 세르베토를 처형한 사건을 관청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칼뱅이 광신적인 독선 때문에 한 인간을 살해하였고, 그와 함께 종교개혁 안에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살해해버렸다고 고발합니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라며 당대 최고의 권력자에게 맞선 카스텔리오의 자유로운 양심을 본받고 싶어요.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인간의 피를 흘린 것은 언제나 유죄이며, 절대로 세계관을 이유로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진리는 퍼져나가는 것이니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학설도, 어떤 진리도 소리지르고 악쓴다고 더 올바르고 더 참된 것이 되지는 않는다.
다원화된 사회가 될수록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그저 다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저는 유시민 선생님의 표현대로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사상이나 단 한 톨의 진실도 담지 않은 사상은 없”다고 믿습니다. 옳고 그름은 판정 내리기가 비교적 쉽지만, 다름의 문제 앞에서는 선택의 자유를 움켜쥐고는 하염없이 고독해집니다. 실컷 고심해서 내놓은 결론도 남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편파적이고 자기본위의 주장이기 일쑤니까요. 그러나 자유 정의 진리를 독점하려는 이들에게 맞서고 제 자신도 독점하려는 유혹을 포기하려고 애쓰겠습니다. 고종석 선생님 표현을 빌려 “열정의 사슬을 자유로써 끊어내고, 광신의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타는 것”으로 사상의 자유시장을 수호하는 병졸이 되고 싶어요. 여담이지만 머잖아 헌법 개정이 된다면 사상의 자유를 명문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양심의 자유에 포함되는 걸로 애매하게 되어 있거든요.
제가 비겁하고 문약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경계하는데 카스텔리오는 큰 그림자를 드리워줬습니다. 점점 자신은 없어지지만 다시금 다짐합니다. 외로워서 적당히 타협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눈치껏 영악해지더라도 끝끝내 제 영혼마저 팔지 않기를. 지조나 소신도 좋지만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은 얼마나 근원적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구차하게 살지 말기를 또 다짐합니다. 세상을 세련되게 욕하기는 쉽지만 티끌만큼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강자와 기득권의 편을 드는 건 쉽지만 이네들을 거스르기는 두렵습니다. 저는 얼마만큼 늦게까지 제 자리를 지키며 부귀에 누추하게 빌지 않고, 권세에 욕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마음이 약해질 때 저는 카스텔리오를 생각하겠습니다. “한 번 어려움에 부딪쳤다고 졸지에 자기가 지키던 뜻을 버린다면, 선비라고 할 수 없다(若因一困拂而遽喪其所守 則不可謂之士矣)”는 퇴계 이황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려울수록 그 사람의 진가가 나온다는 진리를 늘 명심하겠습니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에밀 졸라처럼 “나는 고발한다(J’accuse, 자퀴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5. (남자일 경우) 남자라서 안 좋은 점은?
(여자일 경우) 여자라서 안 좋은 점은
국방색 사회로 말미암아 제 나이 또래 남자들이 군대 문제로 고심해야 하는 지적, 물적 낭비가 너무 아깝습니다. 일전에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병역은 젊은 날의 권리, 병역의 특권을 가진 여러분은 우리의 자랑입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언짢았습니다. 병역은 권리 혹은 특권이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의무일 뿐이며 모든 국민이 골고루 나누는 사회적 부담일 따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여전히 한국 사회의 성역이며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 검토나 부정적 군대문화 청산을 위한 노력은 참 힘든 일이고 대신 여자들이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핀잔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짜 사나이라면 조금 힘든 이 길이 지름길이며, 옳은 길이라고 믿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개성 있는 청년들이 병역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멋지지만, 징병제가 사라진 나라가 훨씬 더 멋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36. 휴일에는 보통 뭘 하는지?
휴일이면 늦잠을 자는 습관은 좀처럼 고치기 힘듭니다. 제가 흠모하는 칸트의 1/10만이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칸트와 제가 같은 꿈을 품었더라도 이렇게 천지 차이가 나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에 대한 관용도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토요일은 사실상 제 개인적인 휴일이라 공부를 한다거나 사무를 처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토요일에는 급박한 시험 공부라도 거의 손에 안 잡혀서 편법으로 금요일 밤에 이은 토요일 새벽과 토요일 밤에 이은 일요일 새벽시간을 이용해왔지요. 이렇게 하면 순수한(?) 토요일은 최소한도로 줄이고 금요일과 일요일을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와서 그나마 조금 낫거든요. 요즘도 별일(?) 없으면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간이 제 달콤한 휴식시간입니다.
37. 미리 쓰는 묘비명
“나에게 항상 새롭고 무한한 경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과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 속의 도덕률”이라는 칸트의 묘지명이 어릴 적부터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96자의 한시 형식으로 된 퇴계 이황 선생님의 자찬묘지명 가운데 “오는 세상을 어찌 알리오/ 지금에도 이룬 것이 없거늘/ 근심 속에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라는 구절도 짠하게 다가옵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는 해학적인 묘비명을 직접 지은 극작가 버나드 쇼 익살도 빼놓을 수 없지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는 마르크스의 묘비명도 거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니까”와 소설가 스탕달의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도 무척 매력적인 문구입니다. 미국의 비평가이자 작가인 도로시 파커의 묘비명인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도 두고두고 미소 짓게 만듭니다.
아참 바람의 딸, 빛의 딸 한비야님이 준비한 묘비명은 “몽땅 다 쓰고 가다”라고 하네요. 정말 그답죠? 지금까지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했고 제 묘지명을 지어본다면 만약 짧게 쓴다면 “너는 내 운명, 自由!”나 “自由여, 좀 더 낮게!”를 새기고 싶어요. 물론 만연체를 애호하는 저는 또 장황한 잡설을 늘어놓을 공산이 크지만요. 아마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자찬묘지명을 능가하는 방대한 분량이 될지도 몰라요. 그만큼 알차게 살아 봐야죠.^^
38. 보통 하루 수면시간은?
수면시간의 분산(variance)이 큰 편입니다. 밤새서 잘 놀기도 하지만 다음 날은 하루종일 잠에 빠져서 결국 총 수면량은 똑같아집니다.^^ 한가할 때는 낮잠도 즐겨서 평균보다는 수면시간이 긴 편입니다.
39.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김동률, 박경림, 양희은, 권해효, 조혜련, 박명수, 지상렬, 노영심, 유재석, 안성기, 백윤식, 박수홍
40. 알라딘, 램프의 요정이 말했다, “세 가지 소원을 말하시오.”
고종석 선생님의 “덤의 보상에는 절제가 수반돼야 한다”는 말씀,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몫이 돌아가는 것이 사회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본 존 롤즈 선생님의 “최소극대화원칙”, 남이 먹을 수 있는 충분히 좋은 것을 남겨두고 부를 축적하라는 뜻의 “로크적 단서”, 신영복 선생님의 “평등은 자유의 최고치(最高値)”라는 말씀 등을 종합해 제 소원을 3단계로 정리해봤습니다. 이런 유토피아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인생이 오직 한번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현세에서 최대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1. 능력 있는 사람이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사회를 바랍니다. 이런저런 연줄로 사람의 가치가 왜곡되지 않는 사회가 그것입니다. 열심히 살면 정말로 성공하는 능력주의 사회를 원합니다. 단 출발선상에 너무 차이가 나서 능력만으로 따라잡기 힘들지 않도록 어느 정도 보정이 있었으면 합니다.
2. 또한 능력 있는 사람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노력한 사람도 적절한 보상을 받는 사회를 꿈꿉니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어쩔 수 없이 재주가 모자라 유능한 사람에 미치지는 못해도 그 보상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보다 현격히 차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끝으로 능력도 모자라고, 노력도 부족했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가장 못난 자에게도 너무 압도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부과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못난 사람의 후생복지의 향상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는 시혜적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한 사회에 공유하고 합의하는 인간다운 삶의 최소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 3번 소원에서 놀고 먹느라 시간을 허랑방탕하게 보낸 이들의 후생까지도 염려하는 건 일견 자유주의 미감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는 까닭은 보다 확산된 자유가 인간적인 삶을 고양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일구는 번영은 마땅히 사람답게 살게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주의자가 그리는 사상의 자유시장이 자신이 증오하는 사상이라도 받아들이듯이, 게으른 사람의 궁핍함을 덜어주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가 빚어내는 차이가 먹고사는 것의 무지막지한 차별을 방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 램프의 요정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라며 짜증을 낼지도 모릅니다. 진짜로 소원을 빌라고 하면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죠.
41. 결혼하고 싶은 나이는?
독신으로 살 계획은 없다는 것밖에 아직 정한 것이 없어요.^^;
42. 노래방 애창곡
노래를 잘 못해서 노래방을 즐기지 않다 보니 애창곡 같은 개념이 없네요. 다만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나 보보의 [늦은 후회]를 노래방 첫 곡으로 자주 불렀던 거 같습니다. 김동률, 이승환 노래 일부와 [아침이슬]도 종종 부릅니다. 최근에 노래방용으로 연습하는 노래로는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이 있습니다.
43. 누군가와 다섯시간 이상 인터뷰를 한다. 누구와 하고 싶은가?
우리 시대 가장 매혹적인 자유주의자이시며, 제 영혼의 스승이신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 논설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저는 제 방을 고종석 선생님을 보배롭게 만드는 서재, 보배롭게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보고재(寶高齋)”라고 이름지어 쓰고 있습니다. 평소 흠모하고 사숙하던 선생님과 같은 기품 있는 자유주의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 고 선생님 없는 익구란 상상하기도 싫어요. 최근에 나온 시평집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를 비롯해 『자유의 무늬』, 『서얼단상』을 권합니다.
44. 최근에 읽은 책
최근에 읽었던 책 가운데 추천할 만한 책으로는 고종석님의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최장집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백낙청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김원중님이 완역한 『사기열전』, 이덕일님의 『조선 선비 살해사건』, 김만권님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홍은주님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경제사상』, 박세일님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한비야님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등이 있습니다. 20대에 1,0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게 목표입니다. 뭐 전부 정독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통독과 발췌독이 대부분이겠지만요.^^;
45. 취미생활
최근 생긴 취미생활은 일기 쓰기입니다.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국보 제153호 일성록(日省綠), 국보 제 303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같은 유구한 기록정신을 이어 받아 저도 흉내를 좀 내보려고요.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참 무섭습니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내 자신에 좀 더 엄격해지는 계기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46. 좋아하는 음악 리스트
김동률님과 전람회 노래 거의 전부를 좋아하며 주로 잔잔하고 가사 많은 발라드곡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굳이 몇 곡 들어보자면 전람회의 [다짐], [10年의 약속], 카니발의 [벗], [거위의 꿈], 김동률의 [동반자], [희망], [귀향], [잔향],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이승환의 [다만], 신승훈의 [오랜 이별 뒤에],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양희은의 [그대가 있음에], 하은의 [아프고 화나고 미안해], 박효신의 [눈의 꽃], 해바라기의 [지금은 헤어져도], 민중가요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Bob Dylan의 [Blowin In The Wind], Beatles의 [Let It Be], [Imagine], Don McLean의 [Vincent] 등이 있습니다. 음악 감상도 잘 안 하는 편이라 자주 듣지는 않아요.^^;
47. 전생에 자신은 무엇이었을까?
농담 삼아 역사서를 편찬하는 사관(史官)이 아니었을까 말을 해보지만 저는 전생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이 땅에 한번 태어나서 한번 살다가 한번 죽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능한 한 옳고 아름답게, 착하고 재미나게 살 계획입니다. 한번뿐인 삶을 대충 살수는 없잖아요.
48. 요즘 최대 관심사
고심 끝에 행정고등고시 일반행정직을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제가 이런 시험 공부를 안 하고 다른 공부를 한다면 그에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하는 시험 공부인 만큼 반드시 성사시켜야 제 기회비용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지만요.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역수의 물이 차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노래를 읊으며 자객 형가(荊軻)는 훗날 진시황이 된 진나라 왕을 암살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우등생은 아니었고 그저 제 때 수업이나 챙겨듣는 모범생에 불과한 제 한계가 얼마나 드러날지도 궁금합니다. 형가가 역수를 건너기 전에 길벗을 기다렸듯이 저 또한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시린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희망차면서도 불안합니다. 서둘지 말고 쉬지 말자고 하지만 조바심도 나고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오지 않는 길벗을 기다리듯이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버려가며 무엇을 이루려는 결단은 참 힘듭니다. 모든 빼어난 것은 드물기에 아름답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칸트의 말씀을 늘 곁에 두고 힘을 내겠습니다.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만 하니까!(Du kannst, denn du sollst!)
* 2008년 3월부로 행시 공부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저는 끝내 역수를 건너지 못했습니다.
49.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고종석의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 19편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시인 김수영이 쓴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따온 제목인 듯싶어요. 고종석 선생님은 당신이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낱말 열 개로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을 꼽았습니다. 김수영 시인님은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고요. 그래서 저도 이런저런 진통 끝에 제가 아름답게 여기는 우리말 열 개를 뽑아봤습니다. 참고로 이에 대한 친절하고 세세한 해석은 익구닷컴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글을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벗, 끼니, 차마, 이태, 젊음, 고맙다, 너그럽다, 처음처럼, 애면글면, 부끄러워하다
50. 존경하는 인물
돌아가신 분들 가운데 존경하는 스승 스물네 분만 꼽아보겠습니다. 본래 제가 열두 분을 뽑으려다가 하도 넘쳐서 부득이 두 배로 늘렸어요.^^;특별한 순서 없이 무작위로 말씀드릴게요. 삼국사기에서 빠졌거나 고의로 빼 버린 많은 사실들을 삼국유사에 수록해 우리 역사를 자주적으로 해석해 문화의 독창성을 일깨워준 일연 스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 시행에 일생을 걸어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려 한 민생을 생각했던 행정가 잠곡 김육,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했던 백범 김구, 끝끝내 대세에 영합하지 않아 선비정신의 고갱이가 된 온건 개혁가의 표상 포은 정몽주.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는 말씀을 과학입국으로 실천한 세종대왕,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빼어난 정치를 선보인 성군 중의 성군인 영민한 학자군주 정조대왕, 꿈에서도 가볼 수 없는 지적 깊이와 더불어 치열하되 재미나는 삶을 가르쳐준 대철학자 칸트, 평생 전체주의와 싸운 자유주의자로 점진적 사회공학을 주창한 칼 포퍼,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시대의 과제를 해결한 매력 넘치는 엘리트주의자 J.M 케인즈.
계급사회의 차별과 폭력에 맞서고 평화와 자비를 설파하며 물질적 행복을 넘어서는 정신의 고매함을 일깨워준 부처님(Buddha), 허리를 굽혀 섬기는 사람은 위를 보지 않는다며 늘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더 가난한 이를 섬긴 마더 테레사, 세속에 찌들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불의에 온몸으로 맞선 맑고 매운 유관순 열사,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이라는 탄식으로 배운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각성시켜준 전태일 열사, 해동공자·문헌공도라는 영예와 더불어 문무겸전의 아찔한 경지를 보여주신 내 할아버지 문헌공 최충.
지공무사(至公無私,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로 약소국을 이끌었던 인간미 넘치는 법가사상가이자 유연한 원칙주의자 제갈공명,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그 사회의 최소수혜자 계층의 입장을 최대한 증진시킨다는 조건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차등원칙을 제시해 못 가진 자, 덜 가진 자에게 애틋한 시선을 보낸 존 롤즈, 폭력에 대한 반대를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해 인류의 감수성에 한 획을 그은 마하트마 간디, 사생취의(捨生取義)하는 대장부의 헌걸찬 기개를 맛깔스럽게 풀어 내려간 맹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라며 한국사의 스파르타쿠스가 된 만적.
백의종군을 감내하고도 “제게는 아직도 전선 열두 척이 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라는 희망의 언어를 말했던 충무공 이순신, 꼿꼿하고 호방한 선비이자 차마 미워할 수 없는 기품 있는 보수주의자 면암 최익현, 인간국보 1호, 걸어다니는 국보라는 자칭이 아깝지 않은 소권(笑權, 웃을 권리) 옹호론자 무애 양주동 박사,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과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통해 어떻게 벌고 쓰는 지를 알려주신 경영학도의 사표 유일한 박사, 문화유산 유출을 막는데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간송 전형필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스승이 오늘날 저를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구접스러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분이 부디 없기를 바랍니다. 에이 설마요.^^;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 [無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