飛반인 탐방 질문과 답변 2탄
익구 2005. 7. 24. 21:37 |글 쓰고 읽기가 참 편해진 인터넷 세상이지만 진솔한 글을 쓰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장황하고 산만하기는 했지만 나란 녀석에게 던져진 질문에 답하면서 내 자신을 궁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질문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 형께서는 대기업(ex.삼성,SK)의 회장이나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거대한 박물관의 관장 자리를 맡아 줄 것을 동시에 부탁받았을 때 어느 것을 고르실 겁니까??ㅋ (나이가 50대 쯤 되었을 때...)
일단 질문이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대기업에서 그런 자리를 저 같은 녀석에게 내어줄 리가 없겠죠. 다만 어디까지나 사고실험이니까 제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버리겠습니다.^^; 나이가 50대쯤이라고 했으니까 그동안 무슨 일은 했든 여생을 대충 먹고 살만하다고 마저 가정하겠습니다. 당장 먹고살기 벅차다면 대기업 간부를 해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여하간 이럴 경우 박물관 관장 등의 일을 시켜준다고 하면 내심 좋아서 입 꼬리가 귀까지 찢어질 거 같습니다. 박물관장씩도 필요 없고 문화재 안내사 혹은 큐레이터나마 할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참 고마울 따름이지요.
얼마 전에 홍유릉(고종, 순종황제릉) 답사를 다녀왔는데 홍유릉 안내를 해주시는 아주머니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능에 올라 가보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제가 문화유산을 좋아하다고 하니까 필 받으셔서 이런 특혜를 베풀어주시더라고요.^^ 이 아주머니는 은행에서 일을 하시다가 은퇴하시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그게 참 부러워 보이더라고요.
지금이야 경영학도로 사는 것으로 정신이 없지만 제 오랜 취미는 역사공부와 문화유산 감상이었으니까요. 불우했던 과거사로 인해 너무 많이 훼손된 우리 문화유산들을 복원하고 더 알려나가는 일에 보탬이 되는 것은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아마 박물관 일을 하게 된다면 그 때쯤 한창 잘 나가고 있을 선배님, 동기들, 후배님들께 손을 좀 벌려서 문화유산 재정비에 투자하도록 하려고요.
저말고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널려있는 일보다는 제가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일, 할 때마다 제 영혼이 기쁨에 겨워 파르르 떨릴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문화유산 쪽 일이겠지요. 물론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니 한계가 있겠지만요. 아무쪼록 행정 당국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문화유산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음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덕분에 무척 즐거운 상상이었습니다. 푸하하
○ 익구형을 보면 항상 스스로를 성찰하고 키워나가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후배에게도 예의와 존중을 잊지 않으시는 형의 모습을 보면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이쯤에서 질문을 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질문을 합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기 위한 질문에서부터, 나 자신을 알고자 하는 질문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겠지요.
제가 궁금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익구형이 살아오시면서, 혹은 앞으로 살아가시면서 그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 있으십니까?
스스로를 향한 것일 수도, 타인에게, 혹은 대자연 앞에 펼쳐내는 질문일 수도 있는 ...
어떻게 보자면, 형의 인생을 걸고 추구하는 바 일 수도 있겠지요.
두서 없는 잡담에 가치 있는 답변을 기대하는 것이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문현답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형님의 현답(혹은 현문)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아마 사흘밤낮은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할 듯 하네요.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 괜찮은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도 너무나 유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에 대한 대답 혹은 대안을 제시하고 그에 걸맞은 실천까지 따르는 것... 참 어려운 일이지요.
제가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꽤 그럴듯한 자유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지난 2년 간 이런저런 생각들을 수입하고, 글들을 발췌하며,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대강의 얼개는 잡아봤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 고심하기보다는 어떻게 잘 실천할 수 있을까로 머리털 쥐어 뽑고 있답니다.^^
"자유주의자"라고 타이틀을 잡아봤지만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나만큼이나 타인의 입장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생각의 자유를 주창하는 자유주의, 다양성을 긍정하는 다원주의를 총칭하는 의미로 쓴 말입니다.
저는 자유주의자로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상도덕을 준수하는 것을 신조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집단의 선택보다 우위에 두는 것으로서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이상 국가나 집단이 그 개인의 결정에 감놔라 배놔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유경쟁이 이뤄지는 시장경제와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자유선거에 의해 권력자를 선출하는 의회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다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믿고 지지합니다. 제가 바라는 자유주의의 이상은 사실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권들이 제대로 실현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론상...^^;
또한 제 개인적으로는 집단에 피신하지 않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자세, 나의 생각과 판단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 남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타인과의 차이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차별이 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차별이 싫다고 차이마저 없애려는 시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차이는 자유의 자연스런 산출물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차이가 폭압적 차별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을 막고,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에도 고개를 가로 저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개성의 향연을 누리면서도 그런 개성들 사이에 현저하게 다른 가치가 부여되지 않도록 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대강 저의 자유주의에 대한 소회를 풀어봤습니다. 이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온 결론을 가지고 당당하게 편파적으로 살기, 그러나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알고 늘 열린 자세로 경청하기, 설령 내 결정이 소수파에다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활화하고 개구리가 되었다고 올챙이 시절을 잊지 말기... 이런 다짐들을 해봅니다.
이와 더불어 철학자 칼 포퍼가 주장한 "점진적 사회공학"도 제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과제입니다. 이것까지 설명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합니다. 혹 관심이 있으시면 번거로우시더라도 익구닷컴에서 "점진적 사회공학"이라고 검색해보면 관련 글이 몇 개 나오니 그걸 참조해주세요.
어린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진 자유주의로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생각 간절합니다. 저는 제가 좀 더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그러한 개성이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의 생각이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창조적 상상력을 연마하는 데 저의 정성을 쏟고 싶습니다. 여하간 여기까지가 저의 답변입니다. 뜨아아 막상 써놓고 보니 제 속내를 마구 꺼낸 것 같아 민망합니다.^^;
인생이란 모이고 흩어짐이 무상하여, 오늘은 모였지만 내일은 각각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고려말 문인 이규보의 글에서 따온 표현입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교류의 즐거움, 소통의 기쁨에 대한 열망은 커져 갑니다. 아무쪼록 넓어질수록 깊어지고, 높아질수록 낮아지며, 적극적이면서도 진지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후배님이 되어주세요.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 책 많이 읽는 형, 군대 가서 훈련 받는 중에는 책 못읽으실텐데~ 형 어찌합니까 ㅋㅋ
공익이셔서 다행이네요
훗 정말 저도 훈련소 기간을 제외하고는 민간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저이지만... 천만다행으로 글 읽고 쓰는 것은 좋아해서 그나마 살아가는 재미에 보태고 있으니까요.
근데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는 하지만 속독하거나 발췌독 하는 경우도 많고, 독서 분야도 편벽되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게임 한판, 당구 한판, 미팅/소개팅 한판 대신에 책 몇 장 더 보고 잡글 몇 줄 더 쓰는 정도이니 말입니다.
무언가 읽고 쓸 수 없는 세상은 제게는 암흑이겠죠. 그 암흑기간이 남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것에 감사하며 덤으로 얻은 시간은 남들을 위해 쓰도록 노력하려고요.
○ 1년에 과연 몇 권의 책을 읽으시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1년에 많아봐야 3권? ㅎㅎ 제기랄
제가 원체 무계획으로 사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독서도 필(Feel)에 의존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기(乾期)와 우기(雨期)처럼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정말 내키는 대로 잡히는 대로 휘리릭 넘겨 읽지만,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을 때는 책 겉표지도 쳐다보지 않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때였던가 어느 선생님께서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생활이다"라고 말씀해주신 것에 큰 감명을 받고 생활화를 하려고 무던 애를 썼는데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네요. 너무 편차가 크고, 편식도 심하니 말입니다.
술잔도 세면서 마시면 맛이 떨어지듯이, 책도 세면서 읽으면 괜한 강박관념만 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속독을 하거나 발췌독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때 이 책을 읽었다고 계상을 해야할지도 애매하고요. 목표는 한해에 100권 정도 읽는 것인데 지난 3년 간의 대학생활에서는 잘 지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학생회 잡일이 몸이 바빴다기보다 괜히 그 쪽으로 신경을 쓰다보니 차분히 앉아있을 시간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고요.
이제 제법 여유로워졌고 공익근무 날짜가 지체되면서 휴학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대학 들어서는 가장 많은 독서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5년 2월 이후 넉 달간 도서관 대출 기록을 추적해봤습니다. 재미없어 대충 보거나 몇 개 부분만 발췌해본 책을 제외하니 60권 정도 빌려봤네요. 거기다가 동생 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것이 15권 정도 되네요. 또한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나 도서관 내에서 읽어버린 책들 포함하면 80권쯤 될 것 같네요. 뭐 제가 엄밀한 학술서적을 본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빨리 읽을 수 있는 역사분야나 문화유산 파트 쪽을 읽은 것이기 때문에 다소 양이 뻥튀기된 셈이지요.
여하간 한해 100권 읽는 것으로 치면 대학 4년 동안 400권이 되어야 하는데 벌써 3년이 지나갔고 할당량에 비해 많이 모자라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4학년 때는 아무래도 이래저래 바빠서 책도 많이 못 볼텐데 말이죠. 그래서 보충학습(?)하는 셈치고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짬짬이 못다 읽은 책들 메워보려고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책을 읽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맑은 일이다(讀書是人間第一件淸事)"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비단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으니 편리한 세상 같아요. 허영의 독서가 적잖았겠지만 많은 책들, 각종 글들에서 아름다운 마음들을 만나는 건 제 낙인 것 같습니다.
자리가 높아지고 몸이 편안해질수록 책을 찾을 수 있는 여유, 문필가씩은 아니더라도 잡글을 쓰면서 삶의 기록을 남겨보는 재미... 이 두 가지와 더불어 모국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사랑까지 안고 사는 제가 되고 싶어요. 재미난 책 많이 보세요.^^
○ 자신의 인생 계획을 20대, 30대, 40대 등등으로 나누어 얘기해주세요.
10년 단위로 딱딱 계획을 세울 만큼 체계적인 것은 없답니다. 차라리 20대와 나중에 노년기 정도를 구분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 듯 해요.
일단 20대에는 당장에 닥친 공익근무를 무탈하게 하면서 장기적인 미래 설계를 해야겠지요. 취업 외의 방도인 대학원 진학과 행정고시 도전 여부를 정하는 것이 일단 첫 관건이 될 듯 하네요. 대학원을 결정하면 기왕이면 4년 간은 더 배워야겠고, 행시를 결정하면 붙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죠(너무 당연한 이야기^^;). 이 둘 다 아니라면 무난히 취업준비 모드로 접어들겠고 졸업을 위한 영어공부를 포함해 각종 상식을 습득하겠지요. 여기까지 얼추 정해지면 세부적으로는 일로매진(一路邁進)해버리려고요.
전 그다지 변화무쌍한 삶을 원하지 않아서 일단 한번 정해지면 큰 궤도 수정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진로 설정을 남들보다 굼뜨게 신중을 거듭하고 있기도 하고요. "힘들게 결정하고 우직하게 밀어붙인다" 주의거든요.
여하간 어찌저찌 삶을 꾸려나가다 보면 세월은 부지런히 흘러가겠지요. 저는 특별히 초인적인 체력을 가지고 있거나 출중한 실력을 가진 녀석이 아닌지라 한 60세 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일손은 다 놓고 싶습니다. 부득이 그 전에 놓아야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자유를 숭상하는 제게 노년기의 자유도 무지 흥미진진할 듯 합니다.
우선 서예를 좀 배워서 지인들에게 제가 쓴 글씨도 막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 때까지도 미처 못간 우리 문화유산 답사(기회가 되면 중국 등의 외국들도)를 다니며 유유자적하겠고, 그 때까지 쓴 제 잡글 중에 괜찮다 싶은 걸로 문집 비슷한 걸 엮어보고도 싶어요.
이런 것들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괜히 모자라고 어리숙하다고 타박하지 않도록 수양을 해야겠죠. 저 또한 그 시절에는 무지하게 어리버리했고 윗사람 눈에 못미더운 녀석이었음을 깨닫고, 후임자들이 잘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축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곱게 늙는 것이 제 마지막 인생계획입니다. 푸하하
○ 강아지 이름을 야니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자로 옆에 덧붙인걸 보니 무언가 의미심장한 작명 센스가 발휘된 결과물인 것 같은데 ㅋㅋㅋ
그다지 의미심장하지는 않습니다. 야니는 세 살 때인 2003년 6월에 데리고 와서 키우게 된 개인데 前주인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평소 흠모하던 철학자인 칸트로 부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주장했으나 가족들의 차가운 반응을 얻고 그냥 야니라 쓰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름은 새로 지어줄 수가 없으니 대신 한자이름을 만들어 주게 됩니다. 야니에 해당하는 한자가 별로 없어 생각한지 1분만에 만들 수 있었지요. 들 野, 진흙 泥... 야니의 개구쟁이스러움과 산책 시의 오두방정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 마치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이 포즈 때문에 '야니 개구리'를 줄여서 '야구리'라는 애칭을 쓰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말티즈이니 털이 새하얀터라 백옥(白玉), 하얀 털에 눈 두 개, 코 하나만 새까맣다고 해서 삼점(三點) 등의 아호(雅號)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야니는 고도의 훈련견이 아닌지라 자기에게 붙여진 다양한 별칭들을 거의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요.^^; 훗 그래도 뭐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내고 있답니다.^^
○ 어떻게 하면 형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제가 환하게 웃던가요?^^; 제가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인지라 어지간하면 웃어 넘기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기는 합니다. 난감한 일이 있을 때도 "야야~ 이거 곤란해~" "당최 이게 무슨 일이람?"이라며 씨익 웃어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나름대로 근엄하고 엄숙하게 무게도 잡고 분위기도 잡고 싶지만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저는 카리스마 있고, 듬직하고, 패기 있다기보다는 그저 열려 있고 쉽고 만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거기까지가 제 한계이고, 그게 또 제 매력이라면 매력일테니 말입니다.
미국의 행동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병이 있는 거 같지만 저는 혼자 있을 때도 실실 쪼개거나 히죽거리기를 잘합니다. 그러다 보면 무료한 일상에도 기쁨이 스며들거든요. 여하간 질문에 답하자면... 하루에 쓸데없이(!) 세 번만 더 웃어 보세요. 팍팍한 우리네 삶에 여유와 평화가 깃들 수 있다고 봅니다. 웃음으로 사치하는 것은 경영학적으로도 유의미한 행동일 겁니다.
모든 것이 고통이다(一切皆苦)라는 불가의 가르침씩은 아니더라도 세상살이는 분명 녹록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얼굴 찌푸리고 있기보다는 악착같이 재미나게 지내려고 노력해야겠지요. 무언가 가지고 싶어서 자꾸 부족해지고, 집착하게 되고, 상실감에 허덕이게 되는 것은 경계하면서 말입니다. 여하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뒹굴 거리더라도 최소한의 양심과 이상은 손에서 놓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너무 걱정근심에 휩싸이지 말고 푸하하 웃으며 지내야겠습니다.
○ 익구야 너 인사하는 법 어디에서 배웠니!!?
너무 좋아!!!! 꺄아~
누나는 제 인사법을 참 좋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별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저는 제 인사법을 "70도 인사"라고 부릅니다. 가볍게 하는 눈인사인 목례(目禮)나 목 부분만을 사용하는 인사보다는 허리까지 숙여야 나오는 각도인 70도까지 육박하는 인사를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실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되어 하지 말라고 해도 자동이지만요.^^;
서울외고 한문시간에 양성준 선생님께서 명심보감 강의를 해주셨을 때 "만약 남이 나를 중히 여겨주기 바란다면 내가 남을 중히 여기는 것을 지남은 없느니라(若要人重我 無過我重人)"라는 구절을 참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비슷한 말로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은 "자기에게 성의가 있으면 상대방에 허위가 있을 리 없고, 자기에게 허위가 있으면 상대방에 성의가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에는 주고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말하니 좀 메말라 보이지만 교류는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이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의미지요. 정리하자면 제가 정성을 다하는 만큼 상대방도 정성을 다해주는 것입니다. 잠시 동안은 정성을 다하지 않고서도 상대방의 호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공짜가 없는 세상, 거저먹는 인간관계는 없겠지요. 친해질수록 상호 존경심을 잃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참 힘든 일이지만요.
지극한 정성,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 이전에 지성이면 감인(感人)인 것 같아요. 제 인사법은 이 지성을 실천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고등학교, 대학교 이중 후배인 만큼 앞으로도 많이 아껴주세요. 저도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 형께서는 대기업(ex.삼성,SK)의 회장이나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거대한 박물관의 관장 자리를 맡아 줄 것을 동시에 부탁받았을 때 어느 것을 고르실 겁니까??ㅋ (나이가 50대 쯤 되었을 때...)
일단 질문이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대기업에서 그런 자리를 저 같은 녀석에게 내어줄 리가 없겠죠. 다만 어디까지나 사고실험이니까 제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버리겠습니다.^^; 나이가 50대쯤이라고 했으니까 그동안 무슨 일은 했든 여생을 대충 먹고 살만하다고 마저 가정하겠습니다. 당장 먹고살기 벅차다면 대기업 간부를 해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여하간 이럴 경우 박물관 관장 등의 일을 시켜준다고 하면 내심 좋아서 입 꼬리가 귀까지 찢어질 거 같습니다. 박물관장씩도 필요 없고 문화재 안내사 혹은 큐레이터나마 할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참 고마울 따름이지요.
얼마 전에 홍유릉(고종, 순종황제릉) 답사를 다녀왔는데 홍유릉 안내를 해주시는 아주머니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능에 올라 가보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제가 문화유산을 좋아하다고 하니까 필 받으셔서 이런 특혜를 베풀어주시더라고요.^^ 이 아주머니는 은행에서 일을 하시다가 은퇴하시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그게 참 부러워 보이더라고요.
지금이야 경영학도로 사는 것으로 정신이 없지만 제 오랜 취미는 역사공부와 문화유산 감상이었으니까요. 불우했던 과거사로 인해 너무 많이 훼손된 우리 문화유산들을 복원하고 더 알려나가는 일에 보탬이 되는 것은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아마 박물관 일을 하게 된다면 그 때쯤 한창 잘 나가고 있을 선배님, 동기들, 후배님들께 손을 좀 벌려서 문화유산 재정비에 투자하도록 하려고요.
저말고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널려있는 일보다는 제가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일, 할 때마다 제 영혼이 기쁨에 겨워 파르르 떨릴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문화유산 쪽 일이겠지요. 물론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니 한계가 있겠지만요. 아무쪼록 행정 당국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문화유산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음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덕분에 무척 즐거운 상상이었습니다. 푸하하
○ 익구형을 보면 항상 스스로를 성찰하고 키워나가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후배에게도 예의와 존중을 잊지 않으시는 형의 모습을 보면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이쯤에서 질문을 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질문을 합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기 위한 질문에서부터, 나 자신을 알고자 하는 질문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겠지요.
제가 궁금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익구형이 살아오시면서, 혹은 앞으로 살아가시면서 그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 있으십니까?
스스로를 향한 것일 수도, 타인에게, 혹은 대자연 앞에 펼쳐내는 질문일 수도 있는 ...
어떻게 보자면, 형의 인생을 걸고 추구하는 바 일 수도 있겠지요.
두서 없는 잡담에 가치 있는 답변을 기대하는 것이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문현답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형님의 현답(혹은 현문)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아마 사흘밤낮은 머리 싸매고 고민해야할 듯 하네요. 좋은 질문을 한다는 것, 괜찮은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도 너무나 유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에 대한 대답 혹은 대안을 제시하고 그에 걸맞은 실천까지 따르는 것... 참 어려운 일이지요.
제가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꽤 그럴듯한 자유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지난 2년 간 이런저런 생각들을 수입하고, 글들을 발췌하며,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대강의 얼개는 잡아봤습니다. 답을 찾기 위해 고심하기보다는 어떻게 잘 실천할 수 있을까로 머리털 쥐어 뽑고 있답니다.^^
"자유주의자"라고 타이틀을 잡아봤지만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나만큼이나 타인의 입장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생각의 자유를 주창하는 자유주의, 다양성을 긍정하는 다원주의를 총칭하는 의미로 쓴 말입니다.
저는 자유주의자로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상도덕을 준수하는 것을 신조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집단의 선택보다 우위에 두는 것으로서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이상 국가나 집단이 그 개인의 결정에 감놔라 배놔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유경쟁이 이뤄지는 시장경제와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자유선거에 의해 권력자를 선출하는 의회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다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믿고 지지합니다. 제가 바라는 자유주의의 이상은 사실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자유권들이 제대로 실현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론상...^^;
또한 제 개인적으로는 집단에 피신하지 않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자세, 나의 생각과 판단에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 남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타인과의 차이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차별이 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차별이 싫다고 차이마저 없애려는 시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차이는 자유의 자연스런 산출물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는 차이가 폭압적 차별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을 막고,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에도 고개를 가로 저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개성의 향연을 누리면서도 그런 개성들 사이에 현저하게 다른 가치가 부여되지 않도록 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대강 저의 자유주의에 대한 소회를 풀어봤습니다. 이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온 결론을 가지고 당당하게 편파적으로 살기, 그러나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알고 늘 열린 자세로 경청하기, 설령 내 결정이 소수파에다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활화하고 개구리가 되었다고 올챙이 시절을 잊지 말기... 이런 다짐들을 해봅니다.
이와 더불어 철학자 칼 포퍼가 주장한 "점진적 사회공학"도 제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과제입니다. 이것까지 설명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합니다. 혹 관심이 있으시면 번거로우시더라도 익구닷컴에서 "점진적 사회공학"이라고 검색해보면 관련 글이 몇 개 나오니 그걸 참조해주세요.
어린왕자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가진 자유주의로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다는 생각 간절합니다. 저는 제가 좀 더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그러한 개성이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의 생각이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를 위해 창조적 상상력을 연마하는 데 저의 정성을 쏟고 싶습니다. 여하간 여기까지가 저의 답변입니다. 뜨아아 막상 써놓고 보니 제 속내를 마구 꺼낸 것 같아 민망합니다.^^;
인생이란 모이고 흩어짐이 무상하여, 오늘은 모였지만 내일은 각각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고려말 문인 이규보의 글에서 따온 표현입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교류의 즐거움, 소통의 기쁨에 대한 열망은 커져 갑니다. 아무쪼록 넓어질수록 깊어지고, 높아질수록 낮아지며, 적극적이면서도 진지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책임감 있는 후배님이 되어주세요.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 책 많이 읽는 형, 군대 가서 훈련 받는 중에는 책 못읽으실텐데~ 형 어찌합니까 ㅋㅋ
공익이셔서 다행이네요
훗 정말 저도 훈련소 기간을 제외하고는 민간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저이지만... 천만다행으로 글 읽고 쓰는 것은 좋아해서 그나마 살아가는 재미에 보태고 있으니까요.
근데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는 하지만 속독하거나 발췌독 하는 경우도 많고, 독서 분야도 편벽되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게임 한판, 당구 한판, 미팅/소개팅 한판 대신에 책 몇 장 더 보고 잡글 몇 줄 더 쓰는 정도이니 말입니다.
무언가 읽고 쓸 수 없는 세상은 제게는 암흑이겠죠. 그 암흑기간이 남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것에 감사하며 덤으로 얻은 시간은 남들을 위해 쓰도록 노력하려고요.
○ 1년에 과연 몇 권의 책을 읽으시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1년에 많아봐야 3권? ㅎㅎ 제기랄
제가 원체 무계획으로 사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독서도 필(Feel)에 의존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기(乾期)와 우기(雨期)처럼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정말 내키는 대로 잡히는 대로 휘리릭 넘겨 읽지만,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을 때는 책 겉표지도 쳐다보지 않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때였던가 어느 선생님께서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생활이다"라고 말씀해주신 것에 큰 감명을 받고 생활화를 하려고 무던 애를 썼는데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네요. 너무 편차가 크고, 편식도 심하니 말입니다.
술잔도 세면서 마시면 맛이 떨어지듯이, 책도 세면서 읽으면 괜한 강박관념만 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속독을 하거나 발췌독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때 이 책을 읽었다고 계상을 해야할지도 애매하고요. 목표는 한해에 100권 정도 읽는 것인데 지난 3년 간의 대학생활에서는 잘 지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학생회 잡일이 몸이 바빴다기보다 괜히 그 쪽으로 신경을 쓰다보니 차분히 앉아있을 시간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고요.
이제 제법 여유로워졌고 공익근무 날짜가 지체되면서 휴학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대학 들어서는 가장 많은 독서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5년 2월 이후 넉 달간 도서관 대출 기록을 추적해봤습니다. 재미없어 대충 보거나 몇 개 부분만 발췌해본 책을 제외하니 60권 정도 빌려봤네요. 거기다가 동생 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것이 15권 정도 되네요. 또한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나 도서관 내에서 읽어버린 책들 포함하면 80권쯤 될 것 같네요. 뭐 제가 엄밀한 학술서적을 본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빨리 읽을 수 있는 역사분야나 문화유산 파트 쪽을 읽은 것이기 때문에 다소 양이 뻥튀기된 셈이지요.
여하간 한해 100권 읽는 것으로 치면 대학 4년 동안 400권이 되어야 하는데 벌써 3년이 지나갔고 할당량에 비해 많이 모자라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4학년 때는 아무래도 이래저래 바빠서 책도 많이 못 볼텐데 말이죠. 그래서 보충학습(?)하는 셈치고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짬짬이 못다 읽은 책들 메워보려고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책을 읽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맑은 일이다(讀書是人間第一件淸事)"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비단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으니 편리한 세상 같아요. 허영의 독서가 적잖았겠지만 많은 책들, 각종 글들에서 아름다운 마음들을 만나는 건 제 낙인 것 같습니다.
자리가 높아지고 몸이 편안해질수록 책을 찾을 수 있는 여유, 문필가씩은 아니더라도 잡글을 쓰면서 삶의 기록을 남겨보는 재미... 이 두 가지와 더불어 모국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사랑까지 안고 사는 제가 되고 싶어요. 재미난 책 많이 보세요.^^
○ 자신의 인생 계획을 20대, 30대, 40대 등등으로 나누어 얘기해주세요.
10년 단위로 딱딱 계획을 세울 만큼 체계적인 것은 없답니다. 차라리 20대와 나중에 노년기 정도를 구분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 듯 해요.
일단 20대에는 당장에 닥친 공익근무를 무탈하게 하면서 장기적인 미래 설계를 해야겠지요. 취업 외의 방도인 대학원 진학과 행정고시 도전 여부를 정하는 것이 일단 첫 관건이 될 듯 하네요. 대학원을 결정하면 기왕이면 4년 간은 더 배워야겠고, 행시를 결정하면 붙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죠(너무 당연한 이야기^^;). 이 둘 다 아니라면 무난히 취업준비 모드로 접어들겠고 졸업을 위한 영어공부를 포함해 각종 상식을 습득하겠지요. 여기까지 얼추 정해지면 세부적으로는 일로매진(一路邁進)해버리려고요.
전 그다지 변화무쌍한 삶을 원하지 않아서 일단 한번 정해지면 큰 궤도 수정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진로 설정을 남들보다 굼뜨게 신중을 거듭하고 있기도 하고요. "힘들게 결정하고 우직하게 밀어붙인다" 주의거든요.
여하간 어찌저찌 삶을 꾸려나가다 보면 세월은 부지런히 흘러가겠지요. 저는 특별히 초인적인 체력을 가지고 있거나 출중한 실력을 가진 녀석이 아닌지라 한 60세 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일손은 다 놓고 싶습니다. 부득이 그 전에 놓아야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자유를 숭상하는 제게 노년기의 자유도 무지 흥미진진할 듯 합니다.
우선 서예를 좀 배워서 지인들에게 제가 쓴 글씨도 막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 때까지도 미처 못간 우리 문화유산 답사(기회가 되면 중국 등의 외국들도)를 다니며 유유자적하겠고, 그 때까지 쓴 제 잡글 중에 괜찮다 싶은 걸로 문집 비슷한 걸 엮어보고도 싶어요.
이런 것들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괜히 모자라고 어리숙하다고 타박하지 않도록 수양을 해야겠죠. 저 또한 그 시절에는 무지하게 어리버리했고 윗사람 눈에 못미더운 녀석이었음을 깨닫고, 후임자들이 잘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축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곱게 늙는 것이 제 마지막 인생계획입니다. 푸하하
○ 강아지 이름을 야니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자로 옆에 덧붙인걸 보니 무언가 의미심장한 작명 센스가 발휘된 결과물인 것 같은데 ㅋㅋㅋ
그다지 의미심장하지는 않습니다. 야니는 세 살 때인 2003년 6월에 데리고 와서 키우게 된 개인데 前주인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평소 흠모하던 철학자인 칸트로 부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주장했으나 가족들의 차가운 반응을 얻고 그냥 야니라 쓰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름은 새로 지어줄 수가 없으니 대신 한자이름을 만들어 주게 됩니다. 야니에 해당하는 한자가 별로 없어 생각한지 1분만에 만들 수 있었지요. 들 野, 진흙 泥... 야니의 개구쟁이스러움과 산책 시의 오두방정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 마치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이 포즈 때문에 '야니 개구리'를 줄여서 '야구리'라는 애칭을 쓰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말티즈이니 털이 새하얀터라 백옥(白玉), 하얀 털에 눈 두 개, 코 하나만 새까맣다고 해서 삼점(三點) 등의 아호(雅號)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야니는 고도의 훈련견이 아닌지라 자기에게 붙여진 다양한 별칭들을 거의 다 알아듣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요.^^; 훗 그래도 뭐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내고 있답니다.^^
○ 어떻게 하면 형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제가 환하게 웃던가요?^^; 제가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인지라 어지간하면 웃어 넘기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기는 합니다. 난감한 일이 있을 때도 "야야~ 이거 곤란해~" "당최 이게 무슨 일이람?"이라며 씨익 웃어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나름대로 근엄하고 엄숙하게 무게도 잡고 분위기도 잡고 싶지만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저는 카리스마 있고, 듬직하고, 패기 있다기보다는 그저 열려 있고 쉽고 만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거기까지가 제 한계이고, 그게 또 제 매력이라면 매력일테니 말입니다.
미국의 행동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저도 이 말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병이 있는 거 같지만 저는 혼자 있을 때도 실실 쪼개거나 히죽거리기를 잘합니다. 그러다 보면 무료한 일상에도 기쁨이 스며들거든요. 여하간 질문에 답하자면... 하루에 쓸데없이(!) 세 번만 더 웃어 보세요. 팍팍한 우리네 삶에 여유와 평화가 깃들 수 있다고 봅니다. 웃음으로 사치하는 것은 경영학적으로도 유의미한 행동일 겁니다.
모든 것이 고통이다(一切皆苦)라는 불가의 가르침씩은 아니더라도 세상살이는 분명 녹록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얼굴 찌푸리고 있기보다는 악착같이 재미나게 지내려고 노력해야겠지요. 무언가 가지고 싶어서 자꾸 부족해지고, 집착하게 되고, 상실감에 허덕이게 되는 것은 경계하면서 말입니다. 여하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뒹굴 거리더라도 최소한의 양심과 이상은 손에서 놓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너무 걱정근심에 휩싸이지 말고 푸하하 웃으며 지내야겠습니다.
○ 익구야 너 인사하는 법 어디에서 배웠니!!?
너무 좋아!!!! 꺄아~
누나는 제 인사법을 참 좋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별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저는 제 인사법을 "70도 인사"라고 부릅니다. 가볍게 하는 눈인사인 목례(目禮)나 목 부분만을 사용하는 인사보다는 허리까지 숙여야 나오는 각도인 70도까지 육박하는 인사를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실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되어 하지 말라고 해도 자동이지만요.^^;
서울외고 한문시간에 양성준 선생님께서 명심보감 강의를 해주셨을 때 "만약 남이 나를 중히 여겨주기 바란다면 내가 남을 중히 여기는 것을 지남은 없느니라(若要人重我 無過我重人)"라는 구절을 참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비슷한 말로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은 "자기에게 성의가 있으면 상대방에 허위가 있을 리 없고, 자기에게 허위가 있으면 상대방에 성의가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에는 주고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말하니 좀 메말라 보이지만 교류는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이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의미지요. 정리하자면 제가 정성을 다하는 만큼 상대방도 정성을 다해주는 것입니다. 잠시 동안은 정성을 다하지 않고서도 상대방의 호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머지않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공짜가 없는 세상, 거저먹는 인간관계는 없겠지요. 친해질수록 상호 존경심을 잃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참 힘든 일이지만요.
지극한 정성,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그 이전에 지성이면 감인(感人)인 것 같아요. 제 인사법은 이 지성을 실천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고등학교, 대학교 이중 후배인 만큼 앞으로도 많이 아껴주세요. 저도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