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스승님의 신작 소설 『해피 패밀리의 출간을 기다리며,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을 뒤늦게 옮겨 옵니다)

 

『독고준』을 읽다. 소설은 독고준의 일기와 그에 대한 감상이 주된 내용이라 고종석 선생님의 전작인 『히스토리아』나 『발자국』의 기록정신을 연상해봄직하다. 소설 속 일기의 선별은 앞의 두 책보다 좀 더 자의적(!)이다. 그 덕분에 회색인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다(독고준의 펜을 빌린 저자의 눈길이겠지만).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19 혁명부터 2007년 대통령 선거까지 반백년의 기록이다. 독고준의 손자뻘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사이의 일기에 손이 머문다. 고려 시대 같은 아주 먼 과거보다 1970년대처럼 조금 지난 이야기가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다니 재미난 일이다. 한국 현대사 인물들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 탓만은 아닐 듯하고, 개관사정(蓋棺事定)을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모양이다. 


독고준의 따님인 독고원은 아버지의 견해에 동조하거나 첨언하다가도 이따금 불편해한다. 어쩌면 저자의 복합적인 생각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저런 생각이 있게 마련이라는 담담한 상식을 말이다. 소설적 허구는 참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존의 문제의식을 극적으로 포장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소설은 후자의 성격이 좀 더 강하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헛갈리는 것이 매력이다. 창의성과 과장성은 사회의 다수파(가 만든 법과 규범)의 시각과 어긋나기도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분 중에 회색인이 많은 이유일 테다.  


독고준의 단정(斷定)하지 않는 단정(端正)함을 배우고 싶다. 시중(市中)에서 시중(時中)을 잡아보고 싶다. 나는 사람의 (노력을 포함한) 재주가 불공평하다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 가치의 우열을 따지는 건 매우 어렵고 조심스런 문제다. ‘독고준을 넘어서는’이란 목표도 좋지만 ‘독고준과 다른’ 매력을 만들어보는 것도 꽤 도전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설령 차별화(?)에 실패한다고 해도 나쁠 건 없다. 세상에는 지식 도매상보다는 지식 소매상이 많고, 지식 소매상보다는 지식 유통상이, 그보다는 지식 소비자가 더 많기 마련이다. 꽤 괜찮은 유통상이나 소비자가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무게가 많이 낮아질 거 같지는 않다.  


나는 삶은 한 번 뿐이라고 믿는다. 일전에 고 선생님께서 언급하시기도 하셨던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라는 명제를 지지한다. 그래서 한 번 밖에 없는 생을 가능한 한 옳고 아름답게, 착하고 재미나게 살고 싶다. 안연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같아질 것이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말씀하셨다. 순임금이나 자신이나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성인이 되고, 안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 위대한 문장을 변용해본다. 


 “독고준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회의하는 자라면 또한 그와 달라질 것이다.”
 
2010. 8. 19. 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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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를 위한 기도

일기 2009. 12. 10. 21:32 |

2008년 10월에 썼던 잡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이 글을 쓸 때의 비장한 결심은 온데 간데 없고 1년이 지나고 봐도 그 때의 심정과 비슷해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들었다. 우리말에서 ‘밥숟가락을 놓다’가 죽음을 일컫듯이 미국에서는 ‘양동이를 걷어차다(Kick the Bucket)’라는 표현이 죽음을 뜻한다고 한다. 여하간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노인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 내용이다. 대학 시절의 카터(모건 프리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 백만장자가 되기 따위의 목록을 적었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같은 소박한 바람을 적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내가 품었던 꿈도 야무졌다. 학보사 편집장 되기, 책 1,000권 읽고 유식 찬란해지기, 평생 함께 할 지인 50명 만들기 같은 거창한 목표로 그득했다. 졸업이 임박해서는 버킷리스트를 흉내 낸 학사모리스트를 만들어보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많이 단출해진 목록을 손에 쥔 순간에도 유종의 미를 빙자한 요행수를 앞세웠다. ‘그래도 이거 하나쯤은 성사되겠지’하는 열망 말이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나의 권리인양 행세했다.  


고종석 선생님은 <미친 사랑의 기도>라는 칼럼에서 자식이 수능시험을 잘 치르길 비는 어머니의 기도가 추하다고 쓰셨다. “그들 가운데 자식이 애쓴 만큼만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는 거의 없을 것”이며, “그들 대부분은 자식에게 ‘덤의 운’이 따르기를 기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내 실력을 다 발휘하고, 상대방도 제 실력을 다 발휘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기도할 자신이 도무지 없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천착하는 한국 사회에서 겨루기를 거듭할수록 그런 자신감이 자꾸 줄어든다.


수능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때 거의 모든 수험생과 관계자들은 ‘덤의 운’을 빌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평가로 배분하는 자원의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내신, 논술,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을 반영하려는 교육 현장의 시도는 ‘덤의 운’을 빌려는 유인을 줄인다. 매번 운수에 기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학생들의 고통을 자아내는 부작용을 낳았다. 획일적인 대학 서열화라는 또 다른 절대적인 기준이 온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분야에 ‘덤의 운’을 빌어야 하는 기도의 남발 사태로 귀결되고 말았다. ‘덤의 운’이라도 빌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어놓은 구조를 고찰해야 한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2008년 상반기 인턴십을 진행한 32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인턴사원 평균 경쟁률이 54대 1로 집계됐다. 2009년 상반기에 42개 기업을 조사해보니 49 대 1로 조금 하락했는데 이는 정규 신입사원 대신 인턴사원을 뽑아서 모집인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떨어질 위험(Risk)이라고 해야 할지 그마저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해야 할지 헛갈린다. 이런 별 따기라면 ‘덤의 운’을 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편익을 내고 싶다는 바람은 모든 수험생과 지원자의 꿈일 게다. 어떤 시험이든 찍은 문제는 남들보다 더 맞히길 바라고, 무슨 면접이든 아는 질문이 나오길 희망할 게다. 그것이 아름답지는 못할지언정 차마 비루하다고 손가락질하기 힘들다. 나 또한 내 분수보다 큰 것을 누리기를 바랐고, 실제보다 높은 명성을 탐했다. 더 나아가 내 둘레에 나와 친한 사람들의 ‘덤의 운’을 빌면서 생색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둘레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조르면서 잘 되면 베푼다고 유혹하기도 했다.


다만 ‘덤의 운’을 바라는 정도를 자꾸 줄여나가고 싶다. 운의 자리에 재주를 채워 넣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건 자기가 하는 일에 가슴 뛰는 사람이 되고, 자기가 딛고 있는 곳에 정성을 쏟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를 위한 기도가 조금 덜 추하고 조금 덜 역겨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했던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 순간이 내 삶의 공백을 넘어 여백쯤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평평함에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대학원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스스로를 다잡지만 어느 순간 ‘너는 이미 합격해 있다’를 주문처럼 외우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기도의 무기력함을 잘 안다며 짐짓 의연한 척한다. 하지만 이런 태연함보다는 만약을 대비한 백수리스트를 좀 추려보는 게 좀 더 생산적인 일일 게다. 나를 위한 기도가 대개 무기력하듯이 나와 무관한 것들을 위한 기원도 무기력하다. 내 이익과 관계없이 아주 좋은 의도에서라도 ‘덤의 운’을 바라는 것은 삼가야겠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덤의 운’을 넘보는 것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좋은 습관의 축적’과 잇닿는다. 시의 적절한 절제는 습관으로 삼아 마땅하다. - [無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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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말미에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으나 혹시 미리 짐작하시게 만들 수 있으니 유념해주세요.


정이현의 동명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주인공 오은수(최강희 분)는 양다리를 넘어 세다리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결혼 상대를 물색하려는 궁여지책일 수도 있겠다는데 생각이 미치니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늘날 연애 결혼이 일반화되면서 동반자적 관계, 일부일처제를 내면화한 부부가 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혼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충동적 이혼을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2008년 들어 이혼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이혼을 다시 고려해 보는 기회를 부여하는 이혼숙려제도의 기간을 늘려 도입했다. 이는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대해 합의하지 않은 경우 협의이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성숙한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적잖다. 이혼숙려제도는 개인적인 행복이나 독자적인 인격을 국가가 나서서 억압할 소지가 크다. 굳이 나라가 할 일을 찾자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일 공산이 큰 이혼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 봄직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결혼을 순수한 사랑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결혼의 문제는 대개 제도상의 결함으로 말미암는다고 봤다. 남자에게 결혼은 생활양식이지만 여자에게는 운명이라고 주장하며 결혼이 여자의 경제주권을 확보하는 기능을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결혼을 계기로 남녀 관계에서 여성의 수동화, 예속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염려했다. 또한 남편과 아이들의 굴레 안에서 자신의 자주성을 잃어버리고 권태에 시달리는 여성의 실태에 좀 더 주안점을 두었다. 그람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독립성과 부부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여성이 모성을 발현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자기 영역을 마련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고 봤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스스로 원해서 간통을 했다면, 거기에는 자유의 한 단면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남녀평등을 확립하는 것이 간통을 사라지게 하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고 주창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결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행복한 삶을 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근본적 방책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혼자서도 윤택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면 이성 사이의 사랑이나 결혼이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고 원만하게 유지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요즘 법과 제도의 변화는 가부장제의 약화를 초래했다. 1990년대 들어 남녀차별을 시정하고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입법이 잇따랐다. 여성발전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하여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법도 제정됐다. 호주제와 제대군인가산점제도에 대한 위헌결정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우리 법 제도에는 아직 주부의 가사활동을 폄하하거나 여성의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성차별 조항이 남아 있다. 국민·공무원·군인 연금법에서 유족연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 재혼하면 그 권리가 소멸한다고 규정한 것과 재산 등록 대상에서 '출가한 여자'는 제외시키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등이 그 사례다. 맥락은 다르지만 강간의 피해자를 여자로 한정해 동성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 간의 획일적 성역할을 법제화한다며 피해자를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미비점을 메우기 위한 입법은 계속될 전망이다. 법조문상의 형식적 문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성역할을 해체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눅여나가는 장치로서 법의 역할이 촉구된다.


고종석의 『사십세』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야합에 의해 태어난 자식, 첩의 자식이라고 명명한다. 사생아라는 처지를 자괴하면서 가족과 부인에게 무책임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하다. 소설의 핵심 주제는 아니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 관계가 자식의 인격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불륜은 배우자의 피해 뿐만 아니라 자식의 고통을 야기하기 마련임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축첩과 같은 지속적인 간통으로 형성된 부자관계는 위태로웠고 가족 관계는 그다지 화목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자신의 육욕을 충족하려 했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결혼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외도를 저질렀다.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했음은 물론이고 자식들에게도 갈등의 씨앗을 남긴 폐해가 크다. 이처럼 간통 행위는 혼인 외 자녀 문제나 가족의 유기 문제 등을 낳는다. 형법 제241조는 법률상 혼인을 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대부분 간통죄를 형사처벌하지 않는 대신 민사상 배상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1990년 김양균 헌법재판관이 간통죄에 대한 합헌결정에 반대하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윤리 도덕을 지키는 주요 동기가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윤리의식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제시한 의견을 경청할 만하다. 간통한 배우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입법화 한다는 전제조건 아래 간통죄 폐지를 논의해 볼만 하다.


간통이 위헌이든 합헌이든 그것이 나쁜 행위이고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은 또렷하다. 간통죄를 세분화하고 중벌 규정을 완화하는 대체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 접근을 해볼 수 있다. 다만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양육비 지급에 관한 강제 조항을 보완하는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소설에서는 서자인 주인공이 아버지의 호적에 올랐다는 내용이 있는데 새로 시행되는 가족관계부는 다양한 가정 모습을 보듬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맞을지도 모른다. 만프레트 타이젠의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5천 종이 넘는 포유류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더불어 지내는 동물은 비버와 수달 등 약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에서는 대부분 포유동물의 새끼들은 젖을 떼자마자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는데 반해 인간의 아이는 혼자 먹고 살 수 있으려면 훨씬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여성이 배란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지 남성과 성교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남성이 가족의 둥지에 머무르며 아이를 함께 양육하게 되고 이것이 일부일처제로 진화한 것이라는 주장이 흥미롭다.


현재의 결혼제도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잠정적으로 합의된 산물이라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점은 기꺼이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연애 호르몬에 의해 전적으로 조종 당하는 존재가 아닌 한 혼인서약을 나눈 배우자에 대한 신의와 존중은 봉건윤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권장할 덕목이다. 한스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에서 재벌의 아내 마리안네는 작가 베르톨트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훌쩍 떠나버린다. 일견 지위와 명예를 버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해방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그러나 이는 소설적 구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거꾸로 마리안네가 가난한 남편을 버리고 부유한 남자에게 마음이 동했다면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남을 해쳐가며 탐닉하는 사랑에는 삼감이 필요하다. 내 욕망에 앞서 배우자를 배려하고 자녀가 받을 상처를 생각한다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품어야 할 미덕이다.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다면 적절한 시기에 헤어질 수 있는 시대다. 그것이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앞으로도 개인의 선택과 다양한 애정관을 수용하도록 법제도가 개편되어야 한다. 법이 상당부분 비켜서야 할 것이다. 법이 물러난 자리에 사랑이 다 들어차기보다는 여백을 남겨둬야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무한하거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욕망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는 결혼제도를 더듬기는 어렵다. 박현욱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결혼한다는 아찔한 상상력을 선보였다. 비독점적 다자연애(Polyamory)라고 멋지게 이름지어진 이러한 시도들을 우리는 어디까지 수긍할 수 있을까? 독점은 대개 나쁘지만 한 사람을 독점하려는 노력은 그래도 애틋하다. 일부일처제를 건사해왔던 정성들을 퉁명스럽게 내치지 못하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혼을 무덤이라고 투덜거리면서 내심 근사한 후원으로 가꾸려고 무진 애쓰는 사람들을 두둔한다. 두 남자를 사랑한 아내는 끝내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는 살면서 임자(?) 없는 매력적인 여남(女男)을 얼마나 많이 만나는가?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오은수는 한 사람을 선택하려고 고심하는 듯싶다. 은수는 세 남자와의 줄다리기 끝에 가장 모범적인 사회생활을 꾸린다고 여겨지는 김영수와 결혼을 계획한다. 그녀는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반듯한 세계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알리바이였다”라며 자신의 결정을 치장하지만, “내 입으로 결혼이라는 말을 뱉은 뒤, 그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역설이 거기 있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은수가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거나 팔자를 고치려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득 보부아르의 언설이 떠오른다. 우리 둘레의 은수가 계산할 건 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 나누는 사랑에 충실하길 바란다. - [無棄]


<소설 속 한 구절>
세상의 숨겨진 이치들을 이미 다 꿰뚫어 버린 것 같지만 실상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몸으로 직접 겪어낸 것은 별로 없었다. 아는 것과 겪는 것 사이에는 분명 엄청난 간격이 가로놓여 있다.
-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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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전후

일기 2008. 1. 1. 17:54 |

071127
선생께서는 시골에 사실 때, 나라에 올리는 세금이나 부역을 반드시 평민들보다 앞서서 바치고, 한 번도 늦춘 일이 없으셨다. 마을의 아전들도 또한 고관의 집인 줄을 몰랐었다.
先生居鄕 凡調役征賦 必先下戶而輸之 未嘗有逋稽 里胥亦不知爲達官家


곽황이 선성(宣城)의 재(宰)로 있으면서 남에게 말한 바 있다. “이 고을의 조세나 공부에 대하여 나는 걱정이 없다. 이선생께서 온 집안 사람을 거느리시고 남보다 앞서 바치시므로 고을의 백성들이 모두 선생의 의를 두려워하고 서로 앞을 다투어 와서 자진 납부하며 도리어 뒤질까 두려워하고 있으니, 내가 번거롭게 한 번도 꾸짖지 않았어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니, 내 어찌 걱정하겠느냐.”
爲宣城宰 嘗語人曰 此縣租稅貢賦 吾無其憂矣 李先生率戶先人備納 鄕里小民 畏先生之義 而爭自來納 猶恐惑後 不煩一呵 靡有所欠 吾何憂哉
<퇴계선생언행록> 卷2, 處鄕 中


능력이냐, 도덕이냐? 조악한 이분법이 나도는 시대다. 도덕도 중요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비장한 언설을 늘어놓는다. 내가 아는 유능함은 다양한 자원들이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건데, 능력 좋아하시는 분들은 경제성장 능력이 단독으로 호젓하게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뭐가 급하신지 자꾸 현실을 초월해 신앙의 영역으로 넘어가시려고 해서 안쓰럽다. 키에르케고르는 도덕적 이상을 성취하는데 한계를 느낀 인간의 불안감은 신에게 복종함으로써 해소된다고 설파한다. 종교적 단계에서 인간의 무력감과 허망함을 극복하게 된다는 기독교 논리인 셈이다. 능력을 성역화하는 분들도 이런 전개를 따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조차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라고 했다는데 경제에 종속된 식객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나누기 힘든 걸 굳이 쪼개서 보시는 분들은 아마도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능력이라고 보시지는 않을 게다. 인용한 일화에서 퇴계 선생은 겉으로 드러나는 몸가짐을 보여줬다. 제자들이 오버한 측면이 있겠지만 퇴계의 처신은 볼만한 것이 많았다. 내면적인 인격이나 품성이 밖으로 배어나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모든 공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관찰 가능하다고 해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상대당, 언론, 시민단체나 이익집단 등이 감독 역할을 일감으로 삼아 사회적 분업을 수행한 대가로 밥 벌어먹고 산다. 보수 우경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들리는데 우리 사회가 건실한 견제집단을 남겨둘지 걱정이다. 문제 제기 좀 하려고 하면 과거지향적이니, 네거티브니, 발목 잡기니 하는 지청구가 날아들지는 않을까.


머잖아 새로운 대통령과 둘레 사람들이 이 나라를 다스린다. 그 누가 되었든 간에 도덕의 최소한인 법을 지키자는 말을 하지 않는 분은 없으리라. 준법도 의심되는 판에 말본새와 청렴성 혹은 청부성(淸富性)을 가늠하는 일은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그러나 이 사치를 부리는 사람이 좀 더 늘어야 이 땅이 좀 더 예측 가능해진다. 사고의 효율성을 높인다. 정치를 도덕화하지 말라고? 나는 다만 정치가 할 일을 법에 맡기는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현상이 서글플 따름이다. 정직은 사회자본이기 이전에, 법률 쟁송의 대상이기 이전에 개인의 미덕이다. 대한민국이 정직이나 솔선수범을 정치적 심판의 소재로 삼기를 포기할까봐 두렵다.


071210
2007년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자와 부과액이 2006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호들갑인 분들이 있다. 2006년에 급등한 부동산값이 공시가격에 반영됨으로써 과세 대상자가 늘었고 과세표준 적용률이 높아져 부과액도 증가했다. 종부세는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하여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 가격안정과 지방재정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2005년부터 시행됐다. 종부세는 불공평한 소득세제를 보완하는 기제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소득은 감추기 쉬워도 부동산은 감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야당과 일부 언론이 세금폭탄 운운하며 부동산 부자들의 이익을 과대 대표한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들의 조세저항을 접하다 문득 고려말 권문세족이 전제개혁에 반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면 너무 실례일까.


분명히 말하건대 종부세를 못내겠다는 성냄과 종부세를 낼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푸념은 동일선 상에 놓아서는 안 된다. 푸념이 성냄에 견주어 더 마땅하다. 종부세는 소득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한 아파트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세금이 올라 부담스럽다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를 경감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설령 미세조정을 하더라도 시장에 규제가 완화된다는 신호를 주지 않기 위한 또렷한 전달이 필수적이다.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거나 상속이나 증여·매매 등 소유권 이전이 발생할 때까지 종부세 납부를 유예해주자는 주장도 있다.


이런저런 검토를 하다보니 문득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특별히 못 된 심보이기 때문은 아닌 듯싶다. 집 한 채가 전부인 봉급생활자나 고령 은퇴자들이 투기와는 무관하더라도 서민들에 비해 담세능력이 월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부세 과세대상이 되는 주택의 시세는 8억원이 넘는다. 시세 8억원 미만인 집을 갖고 있거나 집이 없는 서민은 1000만가구인데 고령 1주택자인 2만 명을 각별히 염려하는 게 선후 관계가 맞느냐 헛갈린다(박구재. “종부세를 위한 변명” 경향신문. 2007. 12. 03. 참조). 종부세 대상자들의 하소연을 귀담아 듣는 자세로 사회 소외계층을 챙겼다면 이 나라가 이렇게 삭막하지 않았을 것이다. 1가구 1주택에 대한 종부세 완화가 공평과세와 조세정의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세금 덜어주는 게 엄청난 묘안인 것처럼 호언장담하는 게 마뜩잖다.


토지의 공공성을 둘러싼 논쟁은 예나 지금이나 한판 승부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세금제도가 무결점일리도 만무하다. 종부세 효과가 미진한 이유 가운데는 정책이 제대로 안착하겠느냐 하는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아가는 종부세 제도를 무작정 흔들기보다는 좀 지켜보면 안 될까? 아둔한 내가 보기에도 종부세에 쏟아 붓는 열정을 좀 더 비천한 곳에도 좀 건네면 사치인가? 종부세에 짜증을 내시는 분들은 그래도 당장 먹고 살만하시기에 드리는 말씀이다. 그나저나 밥벌이도 제대로 할지 모르는 내가 벌써부터 내 집 마련을 걱정하는 건 너무 빠른 김칫국이다.^^;


080101
2007년 12월 31일과 2008년 1월 1일 사이에 고종석 선생님의 단편 <엘리아의 제야>를 읽었다. 소설의 배경은 딱 5년 전 이맘때다. 섣달 그믐날(양력)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모임에서는 안주 삼아 2002년 대선 이야기가 나온다. 5년 뒤에도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과연 2002년에 노무현을 끝내 찍지 않았던 이들의 좌절에 견주어 2007년에 차마 이명박을 찍지 않았던 이들의 낙담은 어느 정도일까.


흠뻑 취했던 주인공이 숙취를 다독이려는 노력이 줄거리다. 이런 표현은 없겠지만 숙취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을 맞추며 함께 했던 벗들을 돌아보는 게 마치 내 삶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듯해 친근하다.^^; 주인공이 산책 중에 타워팰리스 쪽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가랑이 밑을 지나지 않았다는 건 내 자부심이다. 기품 있게 살자”라고 새해 다짐을 하는 장면은 짠하다. 김병익 선생님은 화자가 헤프다는 것, 천민스럽다는 것에 본능적인 저항감을 느낀다고 평했다. 나도 그 꿈에 기대고프다.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어느 어진 이가 하는 말을 들었지. “금화든 은화든 동전이든 다 내주어버려라. 그러나 네 마음만은 간직하라. 진주든 루비든 다 내주어버려라. 그러나 네 생각만은 자유롭게 하라.” 그러나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으니 이런 말은 소용없었지.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나는 또 그가 하는 말을 들었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결코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지. 그것은 많은 한숨으로 보답 받고 끝없는 후회에 팔린단다.” 이제 내 나이 스물하고 둘이 되니, 오, 그것은 진실, 그것은 진실.


주인공의 가족이 정담을 나누다 앨프리드 하우스먼(A. E. Houseman)의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When I Was One-And-Twenty)>라는 시를 암송하는 대목이 푸근하다. 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함부로 건네면 그로 인해 권태에 시달리고 회한이 사무친다는 충고를 노래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좀 더 넓게 풀이해봐도 좋을 듯싶다. 싫증이 엄습하지 않도록 자기 삶의 주인의식 혹은 자존감을 지키라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나는 이 시의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해에도 지인들에게 마음을 냉큼 주었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생각의 감옥에 밀어 넣기도 하겠지만.


내 나이 스물하고 여섯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중독되지 않는 생각을 건사하는 한해를 꾸려야겠다. “만 냥이 어찌 나를 도에 살찌게 하겠소(萬金何肥於道哉)?”라는 허생의 일갈이 내게도 함께 하길! 유능과 실용을 권하는 사회에서 마음공부와 역사공부를 팽개치지 말기를! 올해도 이 모자란 녀석과 함께 해줄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만드시고 나누시길 바랍니다.^0^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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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평으로 올린 글입니다)


고종석 선생님의 신간 『바리에떼』(개마고원, 2007)의 서문에는 2부의 첫 번째 글인 <식민주의적 상상력>(이하 <상상력>)을 꼼꼼히 읽어달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다. 나는 그 부탁에 기꺼이 호응해 삼일절 새벽에 그 글을 가장 먼저 읽었다. <상상력>은 복거일 선생님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이하 『변호』)를 비판한 글로서 친일 문제에 대한 많은 성찰거리를 남긴다. 『변호』는 일제 식민통치는 가혹했으며 조선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설파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식민통치가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며 인구증가율 등을 들어 논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보인다’는 표현을 쓴 것은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선생님은 『변호』의 주장을 “과격한 상황론”이라며 『변호』의 저자가 지금껏 취해온 개인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중시하는 우파적 스탠스와 다름을 지적한다. 특히 “이런 환경결정론을 일제 하의 친일 행위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범죄들, 특히 궁핍에 기인한 강력범죄나 ‘이념 범죄’들로까지 넓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의 논거가 한결 진지하고 단단해(93쪽)”질 것이라며 권유할 때는 무척 통쾌했다. 『변호』의 논리를 차용해 삼일절 새벽에 거리를 질주한 폭주족들도 이 날의 역사적 의미를 다소 요상하게 기린다는 상황론으로 넘어가 주면 어떨까? 각종 불법과 비리로 구속된 재벌 관계자들이 어려운 경제여건이라는 상황론으로 말미암아 유유히 옥문을 빠져나오는 것보다 훨씬 작은 너그러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변호』는 통계적 수치를 통해 식민통치의 경제적 효용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주의자(!)인 나는 그런 식민통치로 이룩한 경제발전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 개개인의 자유를 몇몇 통계수치로 가늠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기도 하거니와 설령 가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훼손된 자유에 대한 비용 처리가 너무 인색하다. 추상적 가치를 계량화하기 즐기는 복 선생님의 장점이 바래는 순간이다. 고 선생님의 의구심대로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변호의 연장선에서 박정희를 바라보고 있(107쪽)”다 보니 이런 무리수를 던진 건 아니었을까.


복 선생님은 징집제도로 젊은이들이 맛보는 비참함은 우리 사회의 복지를 크게 줄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또 징집 제도는 병사들의 낮은 생산성도 문제된다며 주관적 측면에 대한 계량적 접근을 시도한다(복거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문학과 지성사, 1996, 197~203쪽 참조). 이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복 선생님은 『변호』에서 예의 그 장기를 선보이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한국이 징병제 국가가 되고 군사주의 문화에 시달리는 게 일제와 아주 무관하지 않기도 하다.


일제가 조선을 돼지 키우듯이 먹여놓고 탐스러운 살코기를 음미하려했는지, 진심으로 내선일체를 퍼뜨려 이등국민으로나마 편입하려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도록 하자. 조선과 비슷한 정착자 식민지로 손꼽히는 미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상상력>의 논박으로 충분할 듯싶다. “앵글로색슨족의 입장에서는 세 나라가 지상의 낙원일지 모르겠지만,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고향(101쪽)”에 지나지 않음은 또렷하다. 추출 식민지와 정착자 식민지 사이의 섬세한 차이를 헤아리는 것보다 “모든 식민주의는 그냥 나쁘다(105쪽)”라고 외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복 선생님이 힘주어 말씀하시는 그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를 떠받드는데 힘을 다한 나머지 정치적 자유에는 무심해서 당혹스럽다. 조선인들이 제 자유를 헌납하고 이룩한 경제적 이득에 우호적 눈길을 건네는 게 마뜩잖다. 게다가 그 헌납은 자유의지도 아니었다. 이런 점들을 부러 견뎌내더라도 “‘우리 모두가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탓하랴’ 하는 전 국민적 반성주의(123쪽)”만큼은 단호히 반대한다. “죽은 자는 더 궁극적 소수다. 산 사람들과는 달리, 죽은 사람들은 연합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홀로 누워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후대 사람들의 선고를 받는다”는 복 선생님의 주장에도 거의 동감할 수 없다.


안락하게 자연사함으로써 일신과 가문의 부귀영화를 건사한 이들은 충분히 남는 장사를, 보다 정확히는 부당이득을 취했다. 『변호』를 소수를 위한 변명으로 보기에는 그들은 너무 다수였고 주류였다. 다수파와 주류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강요하는 건 어색하다. 관용은 의무라기보다는 권리다. 친일 행위를 했던 지식인 및 사회 지도층을 더 엄준하게 꾸짖는 것이 사회 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그네들이 누렸던 자유만큼의 책임을 요청하는 건 그리 지나친 요구는 아니다.


사회 상층부에 대한 윤리적 기대 수준을 낮추려는 시도는 일제시대에 지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그 파장이 전해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커녕 남들 다 지키는 준법정신도 발휘하지 않은 이들이 사회 상층부에 머무르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지식인의 변절이 일제에게 적잖은 선전 도구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쩌면 『변호』는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어진다(無恒産無恒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들의 단골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자는 곧이어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으면서도 항상 꾸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고 말씀한다. 무항산유항심은 차치하고 무항산무항심도 아니고 유항산무항심이었던 지도층을 보는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일전에 유시민 선생님은 민주화 유공자 보상법을 게임이론을 빌려 설명하며 경제정의의 실현으로 볼 것을 주창했다(유시민, 『WHY NOT?』, 개마고원, 2000, 74~84쪽 참조). 나는 그 제안에 공감하며 반복되는 게임에서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탄탄한 경제정의를 세우길 희망한다. 일제 치하와 같은 암울한 상황이 다시 벌어질 때 자유를 애호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시민과 지식인들이 더 늘기 위해서라도 친일파에 대한 최소한의 기록과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열악한 형편에서도 대한민국에 대한 ‘배신전략’보다 ‘협조전략’을 선택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접근이라고 본다.


역사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복 선생님은 ‘진화’라는 말을 좋아한다. 복 선생님은 진화에도 큰 추세는 있음을 인정한다(“‘친일은 없다’ 발언으로 논란 일으킨 복거일씨.” 동아일보. 2002. 06. 03. 참조). 생존을 선(善)으로 여기는 복 선생님께서도 인간은 점차 이타적으로 나아가는 추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복 선생님은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서 개인들의 이기심은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게임이론의 “‘되갚기’의 놀라운 성공에 담긴 함의들은, 생명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협력한다는 통찰(“‘게임이론’ 벗어난 對北유화정책.” 동아일보. 2005. 11. 14. 참조)”을 조명하는 칼럼에서도 그런 낙관이 읽힌다(참여정부의 되갚기 정책이 미흡함을 질타하는 칼럼을 읽으며 나는 그의 되갚기가 편향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인간이 상호적 이타주의로 진화해감에 있어 되갚기가 필요불급하다면 왜 친일파는 예외가 돼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물며 여기서의 되갚기는 부관참시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며, 후손들을 단죄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진상을 규명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하겠다는 정도다. 광복 이후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최린이 자신의 친일행적을 사죄하며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달라”고 참회한 것과 같은 반성이 드물고 드문 까닭은 친일파들의 상당수는 확신범이었다는 방증이다. 적어도 부끄러움을 인지할 능력을 잃었다는 징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이 그렇고 그렇게 살다간 자들과 그네들의 후손(특히 힘센 자들)의 명예권, 인격권까지 보호해야할 가치가 있을까 싶다.


<상상력>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부득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책 제목 바리에떼(Variete)는 프랑스어로 ‘다채로움’이라는 뜻이다. <상상력>을 비롯한 여러 정치 에세이를 관통하는 원칙은 균형감각이 아닐까 싶다. “치우침으로 치우침을 치유하지는 못한다(58쪽)”는 명제는 이 책의 핵심 주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사회적으로든 유전적으로든)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차가운 인식과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지녀야 한다는 뜨거운 믿음 사이의 균형(58쪽)”을 찾기 위한 정성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고 선생님 글을 달게 읽는 이유는 불완전한 인간의 냄새를 맡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좀 더 기품 있게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의 신산함이 거침없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라는 구절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면 한번 뿐인 삶을 대충 살지 않는 힘이 될 것이다. 책에 실린 각종 평론 외에 선생님이 지인들에게 건네는 사랑 표현도 넉넉한 덤으로 읽어봄직 하다. 아니, 또 하나의 본전이다. - [無棄]

Posted by 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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